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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김윤경 기자] 강남 본사를 떠나 인천 송도국제도시로 둥지를 이전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던 패션그룹형지의 계획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10월 글로벌 패션복합센터를 착공, 2021년 8월 준공되면 연매출 1조원의 세계적인 패션그룹으로 우뚝 설 것이라는 형지그룹의 청사진이 계약서 한 장 때문에 물거품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인천경제자유구역청(IFEZ, 이하 인천경제청)이 송도국제도시로 기업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형지와 맺은 계약 상 문제로 글로벌 패션복합센터 공사에 차질이 생겼다. 문제는 기업 투자유치를 담당한 인천경제청 서비스산업유치과가 형지와 현재로선 불가한 판매시설 분양이 포함된 토지매매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드러나면서였다.
애초 형지는 인천 연수구 송도동 인천지하철 1호선 지식정보단지역 근처에 1만2501㎡ 23층 규모의 오피스 두 개동, 판매시설 한 개동으로 글로벌 패션복합센터를 짓고 그 중 아울렛 등 120여개의 판매시설을 분양해 공사비(땅값, 금융비용, 건축비) 1500억원 중 절반 가량인 730억원을 충당하려 했다.
하지만 형지를 관할하는 인천경제청이 이곳 부지는 ‘산업단지 내 산업시설구역’으로 산업집적 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에 적용받아 준공 후 5년이 지나야 매각이나 분양할 수 있다고 못박으며 공사비 마련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인천경제청과 형지 양측은 서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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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기자가 찾은 송도 글로벌 패션복합센터 공사 현장은 지난해 10월 착공식을 치른 지 10개월이 흘렀지만 아직 골조가 올라가기는커녕 땅에 흙을 파내고 있는 단계였다. 올해 초 일각에서는 “형지 공사장에는 포클레인 두어 대가 흙을 퍼 이쪽저쪽으로 왔다 갔다 나르기만 할 뿐 공사를 하고 있지 않다. 형지는 송도국제도시의 땅값이 오르고 있는 것에 편승해 공사는 진행 안한 채 시간을 끌어 땅값을 올린 뒤 팔아먹으려고 한다”는 땅 투기 설도 제기됐다.
송도국제도시 내에서 분양대행업을 하고 있는 한 소장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형지 공사장에 가면 땅만 다지고 있지 공사가 진척되지 않아 의아했는데 최근에는 땅 속에 파일을 박아놨더라”며 “하지만 경제청의 법에 따라 판매시설 분양이 무산되면서 공사가 빠르게 진행될 지는 미지수다. 형지가 현재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고 들었다. 경제청과 타협이 원만히 이루어져야 공사가 진척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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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날 현장에 가보니 공사가 빠르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형지의 글로벌 패션복합센터 공사를 수주한 롯데건설 측 현장 담당자는 “지난해 10월 착공식을 갖고 11월말 공사 승인을 받아 올해 초 현장사무소를 지었다”며 “5월 중순부터 땅을 파기 시작해 현재는 지하공사를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형지는 계획했던 공사비를 마련하지 못하면 공사가 중단될 수도 있는 위기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특혜 시비에도 연루됐다. 인천경제청이 2013년 10월 형지와 토지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2년간 공사를 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을 해지하지 않고 투자유치기획위원회를 열어 기간을 2년 더 연장해준 사실에 대해 특혜가 아니냐는 지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산업집적 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에 따르면 입주 계약을 체결한 뒤 정당한 사유 없이 2년 이내에 공장 등을 짓지 않으면 입주 계약 해지 사유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형지 관계자는 “당시에는 SPA 브랜드가 인기를 끌며 토종 패션 브랜드가 크게 타격을 받아 공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힘겨운 시간을 버티며 본사를 송도로 이전하는 것을 포기할까도 했다. 진 직원들이 반대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병오 회장이 중국 사업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 인천으로 터를 옮기기로 확정했다”며 “기업을 하다 보면 많은 변수들이 생긴다. 연장 사유가 정당하다면 연장을 해주는 것이 맞지 않냐. 투자심의위원회를 거쳐 결정 난 일이지 특혜는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땅 투기설에 대해서도 말도 안돼는 이야기라고 부인했다. 인천경제청과 토지매매 계약을 체결할 때 본사까지 이전한다는 전제로 계약한 것이기에 절대 건물을 짓지 않고 땅만 팔아넘길 수 없다는 것. 그는 “이미 형지의 계열사 중 형지엘리트는 지난 4월 송도로 이전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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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지엘리트가 송도로 이전한 건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과 박남춘 인천시장이 미팅을 가지면서 성사됐다. 박 시장은 글로벌 패션복합센터의 준공 이전에라도 계열사가 서울에서 인천 송도로 이전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도국제도시로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인천시장까지 발 벗고 나서는 판국에 인천경제청은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분양 승인은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인천 정가 역시 이번 형지와의 사건에 대해 인천경제청이 더욱 보수적으로 해결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 정계 관계자는 “인천경제청이 다른 기업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들며 절대 형지의 손을 들어줄 리 없다”고 귀띔했다.
인천경제청 서비스산업유치과 담당자는 “경제자유구역특별법(경자법)과 산업집적 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의 해석상 차이가 있었다. 원래 경자법은 특별법이라 다른 법보다 우월적 지위를 가지는데 어떤 조항에 걸리면 우월적 지위를 적용하기 어렵다”며 “이 지역은 2000년 산업단지로 지정됐고, 2003년에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됐다. 2013년 형지가 계약할 당시 이곳은 KS(서비스)지역으로 근생시설이 20% 포함돼 당연히 분양이 될 줄 알았다. 최근 상위법인 산지법에 적용받는다는 것이 밝혀져 우리로서도 당혹스럽다”고 해명했다.
당혹스럽긴 형지 측도 마찬가지. 잘못 맺은 계약으로 인해 분양 길이 막히며 구멍 난 공사비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고. 형지 측 관계자는 “분양을 통해 공사비를 마련하려고 했는데 현재로선 우려할만한 비상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계약서를 믿을 수밖에 없지 않냐. 이제 와서 상위법을 들먹이며 분양이 안 된다고 하니 황당하다”며 “우리로선 경제청의 결정이 중요하다. 10월 안으로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해 마무리 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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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에 지어질 글로벌 패션복합센터는 패션그룹형지 본사뿐만 아니라 전 계열사가 입주할 계획이다. 형지는 이곳에 뉴욕패션 주립대학(FIT)과 산학협력 및 패션 관련 연구개발센터를 마련해 패션 클러스터로 조성하겠다는 장미빛 미래를 발표했다.
오피스 시설에는 ▲패션 관련 소재, 디자인, 글로벌마케팅 등 연구개발(R&D)센터 ▲패션 인재 양성 시설 ▲ 중국 및 동남아 시장 진출을 도모하는 형지엘리트, 크로커다일, 카스텔바작, 형지에스콰이아 등 글로벌 사업 부문이 통합 입주할 예정이다. 판매시설로는 패션, F&B, 엔터테인먼트 등을 계획했다.
형지는 이곳을 기점으로 삼아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교두보 및 전진기지로서 기존의 서울·부산 등의 유통 및 생산시설과 연계해 패션산업의 혁신을 시도하는 다양한 시설을 도입할 예정이다. 또 협력사를 포함 1000여명이 근무하는 공간으로 고용창출과 인재채용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계획이다. 경제자유구역 입성을 발판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향하겠다는 형지의 꿈이 무산될까 우려 섞인 시선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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