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재발했을 경우, 페이스북 선례가 악용될 수 있어…이용자보호 법적 근거 사라져” 우려 한목소리
페이스북 로고

[스포츠서울 김민규기자]‘세기의 재판’으로 관심을 모았던 페이스북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첫 법적싸움에서 페이스북이 이겼다. 법원은 페이스북이 통신사와의 망 사용료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일부러 속도를 지연시킨 ‘고의성’이 없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박양준)는 22일 페이스북이 방통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앞서 지난 2016년 12월 페이스북은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국내 통신사와의 접속경로를 홍콩으로 변경했다. 이로 인해 해당 망을 사용해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이용자들은 접속속도가 떨어져 서비스 이용에 불편을 겪었다.

당시 정부가 상호접속 고시를 개정해 트래픽 사용량에 따라 망 사용료를 부담하도록 변경하면서 페이스북은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와 ‘망 사용료’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이에 페이스북이 망 사용료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일부러 접속경로를 변경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논란이 지속되자, 결국 페이스북은 2017년 10월 접속경로를 원상 복귀했다.

방통위는 조사를 거쳐 당시 통신사들과 망 사용료 협상을 진행 중이던 페이스북이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일부러 속도를 떨어뜨린 것으로 판단했다. 방통위는 조사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3월 페이스북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억9600만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고, 이날 법원은 페이스북의 속도조작에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해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방통위는 이번 판결에 대해 불복, 즉각 항소할 방침이다. 김재영 방통위 사무처장은 “즉각 항소할 것”이라며 “기간통신사업자만 통신품질·이용자보호 책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콘텐츠제공사업자(CP)라 하더라도 원인을 제공했으면 거기에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신들이 망 이용대가 협상에서 유리하게 가져가려고, 국내에서 접속경로를 해외로 우회시킨 것은 고의가 분명하며, 악질적인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그는 “페이스북을 포함해 유튜브, 넷플릭스 등 다른 해외 CP들이 국내 이용자를 볼모로 삼아 접속경로를 오늘은 서울, 내일은 홍콩, 모레는 미국 등으로 돌려서 해도 이용자저해 행위가 아니라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반드시 항소해서 대법원까지 결론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이번 판결에 대해 걱정과 우려를 표하면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다. 페이스북이 접속경로를 우회하면서 이용자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받지 못하면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을 때 이번 일이 선례로 남아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이용자 피해 측면에서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용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사라진 것”이라며 “당장 재발한다고 확정지을 순 없지만 혹여나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페이스북 사례가 나쁜 선례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번 판결은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여부가 쟁점으로, 망 사용대가와의 연관성은 낮지만 이번 판결로 인해 향후 페이스북, 유튜브 등 해외 CP들이 망 사용대가와 관련해 목소리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페이스북을 포함한 글로벌 CP들이 망 사용료 협상에서 사용료를 낮춰주지 않으면 해외로 접속경로를 변경한다거나, 소비자피해를 볼모로 삼아 어깃장을 놓을까봐 걱정”이라며 “국회와 정부가 나서서 이용자들이 피해를 받았을 때,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에 대한 법적근거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km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