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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은기자] 이강인(18·발렌시아)에게서 손흥민(27·토트넘 홋스퍼)의 향기가 난다.
‘한국 축구의 미래’ 이강인이 고대했던 스페인 라리가 데뷔골을 터뜨렸다. 이강인은 26일 스페인 발렌시아 메스타야에서 열린 2019~2020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6라운드 헤타페와 홈 경기에서 발렌시아가 2-1로 앞서고 있던 전반 39분 로드리고 모레노의 크로스를 오른발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비록 후반 2골을 더 내주며 경기는 3-3으로 끝났으나,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골든볼’ 주인공의 잠재력을 확인했기에 발렌시아에도 아쉽지만은 않은 일전이었다. 이강인에게는 당연히 잊지 못할 날이 됐다. 출전 기회에 목말라 팀을 떠나고자 마음먹었던 게 지난 여름이었으니, 불과 한 달 만에 주전 공격수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대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셈이다. 게다가 이번 시즌 알베르트 셀라데스 신임 감독의 신임 아래 출장을 늘려오던 차에 처음으로 선발 출격한 경기에서 1부리그 첫 골을 터뜨리며 사령탑의 자존심까지 세워줬다. 2001년 2월19일에 태어난 이강인이 그의 나이 만 18세7개월7일에 기록한 성과다.
손흥민과의 ‘평행이론’은 이 지점에서 성립한다. 그 역시 자신이 선발 출전한 리그 첫 경기에서 만 18세의 나이에 데뷔골을 넣었기 때문이다. 당시 손흥민도 초특급 유망주로 큰 기대를 받으며 2010~2011시즌을 앞두고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와 프로 계약을 했으나, 프리시즌 평가전을 치르다가 새끼발가락 골절상을 당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2010년 10월30일 쾰른 원정에서 선발 첫 경기를 치르며 1-1이던 전반 24분 하프라인에서 올라온 롱패스를 오른발로 한 번 툭 찬 뒤 왼발로 밀어넣으며 역전골을 완성했다. 1992년 7월8일생인 손흥민의 당시 나이는 만 18세3개월22일로, 역대 한국인 빅리거 득점 최연소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후배 이강인이 약 3개월 차이로 2위 자리에서, 한국 축구의 간판스타 손흥민의 뒤를 이어 만 19세가 되기 전 골세리머니를 했다.
서로 주로 쓰는 발이 아니었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오른발잡이인 손흥민은 왼발, 왼발잡이인 이강인은 오른발이었다. 양발을 균형있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유럽 무대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의 대표 무기로 인정받아왔고, 손흥민 역시 어린 시절 축구의 기초를 익힐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양발 훈련을 빼놓지 않고 받은 덕분에 왼발 사용에 능한 편이다. 그러나 유소년 시절부터 일찌감치 스페인으로 건너간 유학파 이강인은 여타 다른 유럽 및 남미 출신 선수들처럼 양발을 쓰는 게 익숙지 않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오른발이 힘을 발휘했다. 문전으로 쇄도하던 이강인은 로드리고의 오른쪽 크로스 때 공에서 먼 왼발이 아닌 오른발로 방향만 바꾸는 슛을 시도했다. 방향은 빗겨가지 않고 원정팀 골망을 출렁였다. 이강인은 손흥민과 달리 스피드와 슛보다는 공간 움직임과 패스로 재능을 드러내는 스타일이다. 손흥민이 데뷔골 때 드리블 뒤 왼발슛, 자신의 장기로 성공시대를 알렸다면 이강인 역시 볼이 없을 때 움직임(오프더볼)에 이은 간결한 마무리로 자신의 특징을 나타냈다.
손흥민은 자신의 데뷔골을 시작으로 성인무대에서 ‘손흥민 시대’를 열었다. 이날 이강인도 첫 득점을 통해 유럽 정복에 나설 수 있을지 기대가 모인다. 이미 이 골로 이강인은 소속팀의 역사를 여러번 다시 썼다. 셀타 비고 소속으로 2012년 9월 득점을 기록한 박주영(34·서울FC) 이래 7년 만에 라리가에서 득점한 한국인이 됐고, 클럽 역사상 세 번째 어린 나이로 정규리그에서 득점한 선수이자, 구단 외국인 최연소(18세 218일) 득점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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