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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이었다. 당시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에 몸담은 손흥민(레버쿠젠)은 팀 동료 슬로보단 라이코비치와 훈련 중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손흥민이 득점 기회를 놓치자 라이코비치가 조롱하는 말을 하면서 감정이 격해진 것이다. 라이코비치가 주먹을 휘두르자 손흥민은 발차기로 대응했다. 독일 언론은 ‘손흥민의 쿵푸킥’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국내 언론과 팬들은 대표팀 막내이자 만 20세의 앳된 이미지인 손흥민이 유럽 선수를 향해 발차기한 것을 매우 놀라워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손흥민은 또 한 번 난투극 직전까지 갈 뻔했다. 20일(한국시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마르세유(프랑스)와 연습 경기에서 후반 42분 제레미 모렐과 멱살을 잡으며 신경전을 펼친 것이다. 손흥민이 페널티박스 오른쪽을 돌파하던 중 모렐이 거친 태클을 시도했다. 필요 이상으로 발 깊숙이 들어온 태클에 손흥민은 슬쩍 다리를 들어 올려 불만을 보였다. 격분한 모렐과 충돌했다. 멱살까지 잡았다. 양 팀 동료까지 달려들어 집단 난투극으로 번질 뻔했다. 다행히 코치진까지 합류해 양 선수들을 떼어놓았다. 과거 이청용(볼턴)이 프리시즌 때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해 한 시즌을 통째로 날린 적이 있다. 모든 선수들이 시즌 개막을 앞두고 부상에 주의를 기울인다. 2014 브라질월드컵을 마치고 팀에 복귀한 지 하루 만에 실전 경기를 소화한 손흥민도 하마터면 봉변을 당할 뻔했다.
국내 팬들은 과거 이청용에게 부상을 입힌 톰 밀러를 떠올리며 모렐를 향해 ‘제2의 톰 밀러’라고 맹비난했다. 그럼에도 멱살을 잡는 손흥민의 저돌적인 모습을 또 한 번 주목하고 있다.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 유럽파 선배들은 물론 유럽에서 뛰는 아시아 선수들은 상대 선수와 신경전이 발생하면 피하는 일이 많다. 격한 감정 싸움으로 이어지면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아시아 선수에게서 ‘순둥이’라는 이미지가 붙는 이유다. 그러나 손흥민이 이례적으로 맞불을 놓은 건 축구 스승이자 아버지인 국가대표 출신 손웅정 씨의 가르침도 한몫했다. 평소 엄하기로 소문난 그는 2년 전 라이코비치 사건 때도 아들에게 “냉정하게 상황을 설명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상 피해자인 아들의 상황을 듣고선 발차기 행동에 대해 “잘했다”며 “어느 상황이든 네 존재감을 보이라. 유럽에선 선수끼리 경쟁심이 한국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같은 팀끼리 치고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특히 너처럼 동양에서 온 선수를 무시하는 경향이 많아 스스로 위축되는 건 자신과 한국인의 이미지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손흥민도 동료와 싸운 뒤 호랑이 같은 아버지의 지도 방식을 떠올리며 ‘혹시나 야단맞으면 어쩌지’라고 생각할 만했다. 하지만 더 강하게 맞서라는 아버지의 뜻을 마음에 품었다. 난투극까진 아니어도 분데스리가에서도 상대와 종종 가벼운 신경전을 펼칠 때 주눅 들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일이 많은 이유다.
상황에 맞지 않은 과한 행동은 무리가 있지만 그간 축구 변방에서 넘어온 아시안 인을 내려보던 유럽 선수에게 손흥민의 행동은 돋보일 수밖에 없다. 지난 월드컵에서 보기 드문 개인 능력으로 찬사를 받은 그가 유럽 땅에서 정신적으로도 강해지고 있다.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