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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결과를 떠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KBO리그 39년 역사상 최초로 형제가 선발투수로 맞대결을 펼친 진귀한 장면이 연출됐다. 경기를 압도하는 투수전은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2군에서 담금질을 하다 어렵게 기회를 잡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부친 환갑 잔칫날에 인천 SSG랜더스필드 마운드에 번갈아 가며 오른 김정빈(27·SSG) 정인(25·키움) 형제 얘기다.
김정빈·정인 형제는 9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SG와 키움의 더블헤더 2차전에 나란히 선발등판했다. 키움 홍원기 감독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미세먼지 취소 등 변수로 인한 선발 로테이션 과정에 형제가 맞대결을 하게 됐다. 나도 형제 선수였지만 KBO리그에 또 하나의 기록을 썼다는 점에서는 축하할 일 아닌가 싶다. 부모님께서 참 난감하시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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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역사상 형제가 같은 날 나란히 등판한 적은 있다. 2016년 6월 10일 당시 KT 정대현과 KIA 정동현이 각각 넥센(현 키움)과 삼성을 상대로, 같은해 7월 27일 롯데 박세웅과 KT 박세진이 LG와 KIA를 상대로 각각 선발등판하기는 했다. 한화 김범수와 삼성 김윤수는 지난해 7월 21일 KIA와 NC전에서 같은 날 패전투수가 되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SSG 최정·항 형제는 지난해 9월 13일 문학 롯데전에서 박세웅을 상대로 역대 최초의 같은 투수를 상대로 형제가 홈런을 때려내는 ‘사건’을 만드는 등 형제에 얽힌 기록은 꾸준히 이어졌다. 그런데도 형제가 선발 투수로 맞대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롯데 윤동배·형배 형제가 1990년대에 같은 경기에 릴레이 등판한 기록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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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빈은 역사적인 경기를 앞두고 “설렘반 긴장반이다. 가족이고 동생이지만 지고 싶지 않다”며 웃었다. 김정인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영광”이라며 “어릴 때부터 항상 맞대결을 하자고 얘기했다. 농담삼아 했던 일이 현실로 이뤄져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2015년 7월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퓨처스올스타전에서 나눔 올스타로 나란히 선발된 경험도 갖고 있다. 이 역시 역대 최초 사례로 남아있다. 당시 형제는 “선발이든 불펜이든 1군에서 맞대결을 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 바람이 2123일 만에 이뤄졌다.
마침 이날은 형제의 부친 김재성씨가 환갑을 맞은 날이다. 김정빈은 “아버지는 동생을, 어머니는 나를 응원하신다. 둘이 선발로 맞대결한다고 말씀드렸더니 걱정을 더 많이 하시더라. 어제는 어버이날이었고 오늘은 아버지 환갑이라 최선을 다해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고 싶다”고 다짐했다. 김정인도 “TV로 중계를 보실텐데 어버이날 선물로 호투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애틋한 가족사랑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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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바람과 달리 투구 내용은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형은 1회 1사 1루, 2회 2사 만루, 3회 무사 만루 등 매이닝 위기를 맞았지만 씩씩하게 무실점으로 버텼다. 특히 3회초에는 볼넷과 안타, 몸에 맞는 볼로 무사 만루 위기를 자초하더니 송우현과 박주홍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보낸 뒤 전병우를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내고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쳤다. 그러나 3이닝 동안 70구를 던져 4회초 장지훈에게 마운드를 넘겨줬다. 동생은 조금 더 실망스러웠다. 1회말 최정에게 좌월 솔로 홈런을 맞고 먼저 실점했는데, 3회말 볼넷과 몸에 맞는볼로 1사 1, 2루 위기에 몰린 뒤 정의윤에게 적시타를 내주는 등 3이닝 3안타(1홈런) 3실점하고 강판했다.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느낀 경기였지만, 형제는 서로의 투구를 묵묵히 지켜보며 눈빛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