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
고 이태원 태흥영화사 전 대표 빈소가 마련된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 고인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스포츠서울 | 남혜연기자] 영화인들이 지난 24일 세상을 떠난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의 빈소를 찾아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태원 대표의 작품에 출연했던 ‘장군의 아들’의 신현준 부터 고인이 임권택 감독과 함께 만든 마지막 작품 ‘하류인생’의 조승우 등 모두 침통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문성근은 조문을 마친 뒤 “고인은 한국 영화의 기둥이었다”면서 “임권택 감독과 한국 영화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신 어른이셨다”고 말했다.

이태원 대표와 영광의 시간을 함께했던 임권택 감독과 정일서 감독 역시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정감독은 이태원 대표에 대해 “사업가로서가 아니라 영화를 사랑해서 영화를 만든 마지막 제작자”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또한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아 자리를 지킨 임권택 감독은 “가장 빛나는 순간을 함께 한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이태원 대표는 1938년 평양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전쟁 때 피란 과정에서 가족과 떨어지면서 숱한 어려움 속에 성장했다. 중학교 졸업 후 부산에서 상경한 뒤에는 한때 ‘조직’에 몸담기도 했다.

1959년 우연히 만난 무역업자가 영화제작을 권유하면서 고인의 첫 영화 ‘유정천리’가 탄생했으나 당시 ‘정치깡패’였던 임화수의 영화에 밀려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20∼30대 시절 군납과 건설 관련 일을 했으며, 1973년 인수한 의정부 소재 빌딩의 극장을 운영하게 되면서 다시 한번 영화계와 인연을 맺고 경기, 강원 지역의 영화 배급을 시작했다.

이후 1984년 부도 직전의 태창영화사를 인수해 ‘태흥영화사’를 설립하며 20년 만에 영화제작자로 다시 나서게 됐다. 이때 임권택 감독과 ‘비구니’로 처음 만나게 됐지만, 당시 불교계 반발로 영화 개봉이 무산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무엇보다 고인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잇달아 히트시키며 한국영화의 부흥에 기여한 인물이다. 1985년 작품 ‘무릎과 무릎 사이’, ‘뽕’, ‘어우동’ 등 에로티시즘 영화 부터, 1989년부터 임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 ‘장군의 아들’, ‘서편제’ 등이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거물 제작자로 거듭났다.

여승의 파란만장한 삶을 녹인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주연배우 강수연이 제16회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는 영광도 안았다. 이후 ‘장군의 아들’(1990년작)과 ‘서편제’(1993년작)는 각각 서울 관객 68만 명, 100만 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작품은 계속됐다. 임권택 감독과 꾸준히 호흡을 맞춘 고인은 ‘춘향뎐’으로 칸 영화제에 처음 입성, 한국 영화로는 최초로 칸 영화제 장편 경쟁부문에 오르는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2년 후 ‘취화선’으로 임 감독이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며 한국영화사를 새로 썼다.

고인이 2007년 임 감독이 연출한 ‘천년학’ 제작을 돌연 포기하면서, 이 전 대표의 자전적 삶을 다룬 조승우 주연 ‘하류인생’(2004년작)이 두 사람이 함께한 마지막 작품이 됐다.

총 37편의 영화를 제작한 고인은 한국 영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옥관문화훈장(1993년), 은관문화훈장(2003년), 대종상 영화발전공로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특별제작자상, 백상예술대상 특별상 등 각종 훈장과 상을 받았다.

한편, 이태원 대표는 지난해 5월 낙상사고를 당한 뒤 의식이 없는 상태로 약 1년 7개월간 중환자실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한숙씨와 자녀 철승, 효승, 지승, 선희씨가 있다. 발인은 오는 26일 오전 10시, 장지는 분당 메모리얼파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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