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oTalk_20220222_105152672
장규돈 작가가 집에 대한 생각을 담아낸 작업을 바라보고 있다. 제공|룬트갤러리

[스포츠서울|김효원기자] 집은 생존의 도구다. 인류는 생존에 최적인 방법을 찾아 터를 파고 집을 지어 비바람을 피했다.

현대에는 와서 집은 부(富)의 산물이 됐다. OO동 OO아파트에 사는 것이 신분을 대신 말해준다.

‘터무니없다’는 말이 있다. 허황하여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터무니는 ‘터’와 ‘무늬’가 결합한 단어로 터에 새겨진 무늬다. 터무니없다는 것은 터의 무늬가 사라져 터의 과거가 지워졌다는 의미다. 터무니없어진 시대, 집의 기억을 복원하는 복원술사가 있다.

KakaoTalk_20220222_105241295
장규돈, 사구에 지은 집 1, 시멘트, 톱밥, 모래, 나무, 유채, 35×36×20㎝, 2022. 제공|룬트갤러리

서울 룬트갤러리에서 기획전 ‘회화적 건축술’전을 열고 있는 서양화가 장규돈 작가다. 독립기획자 인가희씨가 기획을 맡은 이번 전시에서 장규돈 작가는 40㎝ 미만의 작은 집 조각 11점을 통해 집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흙, 시멘트, 모래, 연탄, 톱밥, 나무 등 재료를 이용해 만든 집은 집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허술하다. 갈라지고 부서지고 금방이라도 허물어질듯하다. 어느 집은 용암처럼 솟아올랐고 어느 집은 비바람에 침식된 모양이다. 빨간색, 파란색 물감이 뿌려져있기도 하고 까맣게 그을리기도 했다.

KakaoTalk_20220222_105241295_06
장규돈, 침식 작용으로 빚은 집 3, 연탄, 시멘트, 모래, 나무, 톱밥, 27×27×24㎝, 2022. 제공|룬트갤러리

세부적인 작품 제목을 보면, 건조한 사막의 열기가 떠오르는 ‘사구에 지은 집,’ 불로 그을린 ‘열로 정화한 집,’ 붉은 용암같은 ‘용암으로 빚은 집,’ 하얀 모래가 쌓인 듯한 ‘젖은 모래를 쌓아 만든 집,’ ‘침식 작용으로 빚은 집,’ ‘풍화작용으로 빚은 집’, ‘해안 사구에 지은 집’ 등 지형과 집의 관계성에 주목한 제목이 눈길을 끈다.

이같은 작업은 장규돈 작가가 이탈리아 마테라를 여행하면서 만났던 이색적인 주거지에서 영향을 받았다. 협곡 안에 위치한 석회암 바위동굴 거주지인 ‘사시 디 마테라’는 작가에게 집과 자연, 환경, 그리고 인간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하게 했다. 그리하여 지세(topography)와 식생(vegetation)이 드러나는 터와 집을 상상하며 시멘트, 탄 연탄, 흙, 나무와 톱밥으로 집을 빚었다.

KakaoTalk_20220222_105241295_04
장규돈, 젖은 모래를 쌓아 만든 집, 시멘트, 톱밥, 모래, 나무, 유채, 23×23×20㎝, 2022. 제공|룬트갤러리

시멘트를 재료로 사용했음에도 집은 전혀 견고하지 않다. 오히려 부스러질듯 허술하다.

장규돈 작가는 “대학 졸업 후 유화로 인물화를 그렸다. 비정형적 형태와 우연적 효과를 좋아해서 캔버스를 바닥에 뉘인 상태로 용액을 부어서 재료가 굳으면서 생기는 변화를 즐겼다. 그러다 유화로 모래로 된 집을 그리다가 집이 따로 떨어져 나와 입체가 되었다. 입체에서도 우연적인 변형을 만들어내기 위해 시멘트에 톱밥을 섞은뒤 태우거나 그 위에 물감을 붓는 등 실험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KakaoTalk_20220222_105241295_02
장규돈, 열로 정화한 집, 가열된 시멘트, 톱밥, 나무, 19×19×13㎝, 2022. 제공|룬트갤러리

집은 집이지만 현대적인 건축이 아니라 오히려 태고의 자연성을 지니고 있다. 터와 대지가 에너지를 서로 나누는 것. 자연적이지도 인공적이지도 않은 그 사이에 있는 집이다.

이같은 장규돈 작가의 작업에 대해 전시를 기획한 기획자 인가희씨는 “장규돈의 ‘회화적 건축술’전은 터, 집, 그리고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연과 인간이 만나 서로 어우러지는 터가 형성되고 땅의 에너지를 오롯이 받아낸 집이 만들어지는 우주적인 기운을 표현했다. 내가 두발 딛고 살아가는 터의 의미가 중요하기에 인간과 자연이 공감하고 상생하는 실존적 풍경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고 밝혔다.

eggrol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