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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양평(경기)=조은별기자]“장애인이 받는 소외, 차별, 배제가 아닌, 인간 정은혜의 매력을 주목해달라.”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통해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다운증후군 캐릭커처 작가 정은혜(32)의 부모인 서동일 감독과 장차현실 작가는 이같이 당부했다. 그동안 감내하기 힘든 상처를 품어온 딸이 드라마를 통해 희망의 아이콘이 된 점은 고무적이지만 ‘특별한 사람’이 아닌 한 인간으로 봐달라는 의미다.
부부는 정 작가의 일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니 얼굴’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니얼굴’은 부친 서 감독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정 작가의 일상을 촬영한 작품으로 2020년 제 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은혜가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방구석에서 뜨개질만 하고 상상의 친구들을 만나 소리치고 싸우는 게 우리의 일상이었다. 은혜의 미래를 상상하면 암담했다.”(서동일 감독)
학령기를 마친 정 작가는 갈 곳이 없었다. 대학교육까지 마쳤지만 사회는 그를 원하지 않았다. 세상과 관계가 단절되자 방문을 닫고 뜨개질만 했다. 몸과 마음은 빠르게 퇴행했다. 급기야 조현병까지 앓았다. 그런 정 작가를 바라보는 부모도 애가 탔다.
정 작가의 동생 서은백 군이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2013년, 어머니 장차현실 작가는 서군의 학교 앞에 화실을 마련했다. 당시에도 인기 작가였기에 입소문을 타면서 화실 운영이 탄력을 받았다. 장차현실 작가는 집에만 있던 딸에게 “30만원 줄 테니 아르바이트 겸 화실 일을 도우라”고 권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정 작가가 스스로 방문을 열고 나왔다.
“어느 날 은혜가 결석한 학생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꽃을 그리다, 사람들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은혜의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생각해보니 딸은 손재주가 좋은 편이었다. 뜨개질을 쉬지 않았고 일기도 매일 썼다. 붓을 잡기에 다소 늦은 20대 중반, 출발은 뒤처졌지만 정 작가는 쉬지 않고 그렸다. 그동안 그린 캐릭커처만 약 4000장에 달한다. 장차현실 작가는 “발달장애인이 언어 때문에 사회와 소통하기 힘든데 우리 은혜는 그림을 도구삼아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정 작가가 앓던 시선 강박증(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계속 다른 방향으로 보는 강박적 행동)도 사라졌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너무 외로워서 그렸다”는 영옥(한지민)의 대사처럼 작가도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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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문호리 리버마켓의 ‘인싸’지만 처음부터 그가 인기 작가는 아니었다. 장차현실 작가는 “초창기에는 캐리커처 한 장에 5000원을 받았다. 6명 그려주고 3만원을 벌어서 셋이서 만원짜리 스테이크를 먹으면 그렇게 행복했다”고 털어놓았다.
아침 10시에 시작하는 문호리 리버마켓에 가기 위해서는 온 가족이 8시부터 준비해야 했다. 서 감독은 “강가는 여름에 덥고, 겨울에는 평지보다 더 춥다. 은혜가 하고 싶어해서 따라가긴 했지만 솔직히 억지로 끌려 나갔다”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림에 몰두하는 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서 감독은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는 딸의 모습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니얼굴’은 그렇게 기획된 작품이다.
“은혜가 배려받는 셀러가 아닌 마켓의 구성원으로 셀러들과 동등하게 어울리고 관계를 위트있게 주도하며, 그림실력이 좋아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아빠가 아닌 감독 입장에서 굉장히 매력있는 캐릭터라는 판단이 들어 영화화에 착수했다.”
3년의 분량을 편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3~4시간 분량을 줄이니 화면 속에는 정 작가와 장차현실 작가의 비중이 반반이었다. 작가의 옆에 어머니가 늘 분신처럼 붙어있다 보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부부는 화면 속에서 엄마의 몫을 빼기로 결정했다. 장차현실 작가는 “장애인 엄마가 나오면 신파가 되곤 한다. 내 모습을 빼니 그제서야 은혜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다큐멘터리 속 정 작가는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준다. 집에서는 엄마에게 한껏 짜증을 내지만 마켓만 나가면 활기를 띤다. 예쁘게 그려달라는 손님들에게 “안 그래도 예쁘다”고 응수하고 김광석과 김정호의 노래를 즐겨 부르곤 한다. 하지만 직접 쓴 시에서는 “나는 왜 장애를 가진 채 태어났을까”라며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장차현실 작가는 “장애인이 착하고 온순한 존재가 아니라 의지를 갖고, 화도 내며, 욕구를 갖고 있는 존재로 보이길 바랐다”고 강조했다.
부부에게 딸 은혜는 어떤 존재일까. 장차현실 작가는 “우리의 갑”이라고 웃으며 표현했고 아버지 서 감독은 “감독이지만 실상 로드매니저”라고 답했다. 부모의 끝없는 사랑이 정은혜라는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를 빚어낸 듯 보였다.
mulgae@sportsseoul.com
사진|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황혜정기자 et16@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