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트 월 기자 추모
2022 카타르월드컵 현장취재 중 기자석에서 쓰러져 사망한 그랜트 월 미국 기자. 그를 추모하는 꽃이 그의 사진과 함께 지난 10일 카타르 도하의 알바이트 스타디움 기자석에 놓여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스포츠서울 | 김경무전문기자] 4년마다 한번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운좋게 신문사나 방송사에서 취재 가는 순번이 되면, 주위에서는 부럽다고들 한다. 실제 그렇기도 하다. 언제 이 시대 최고스타 리오넬 메시 경기를 직관하고, 공식 기자회견 때 바로 눈앞에서 그를 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실제 취재에 가면 힘든 게 많다. 시차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자고, 기사 아이디어와 마감과 관련한 스트레스 때문에 미칠 것 같다. 그런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특히 현지와 한국과의 시차가 큰 유럽이나 아프리카, 아랍권 국가에 취재를 가면 축구기자들은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쉼없이 일을 해야 한다. 현지에서 잘 시간이 한국은 일어날 시간이라 계속 마감해야 한다.

그랜트 월 기자
2022 카타르월드컵을 취재하던 그랜트 월 기자의 생존 때 모습. BBC

2022 카타르월드컵 취재 도중, 최근 숨진 미국 기자 그랜트 월(48)의 사망 원인이 14일(현지시간) ‘대동맥 파열’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지난 10일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의 8강전 도중 취재기자석에서 쓰러졌고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가슴에 압박감을 느꼈다고 호소했던 그였다.

외신들에 따르면, 월 기자는 남자 월드컵만 8번 취재할 정도로 베테랑 축구 전문이었다. 여자 월드컵 4차례, 올림픽 5차례, 대학농구 결선 토너먼트 12차례 등 수많은 현장을 취재하면서 미국농구기자협회가 수여하는 ‘올해의 스토리상’도 4차례 수상했다. ‘베컴 실험’, ‘현대 축구의 거장들’ 등 저서도 남겼다.

월은 지난 5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3주째 잠도 거의 못 자고, 스트레스가 심하다.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든다”고 토로한 바 있다. 같은 축구기자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성명을 통해 “고인의 축구 사랑은 엄청났다. 국제경기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그의 기사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필자는 지난 2010 남아공월드컵이 마지막 월드컵 현장 취재였다. 1994 미국월드컵과 2002 한·일월드컵 이후 3번째였는데, 월 기자의 죽음으로 그때 일이 오버랩됐다.

당시를 돌아다보니 아프리카 나라에서 현지시간으로 매일 새벽 일어나 방에 난로를 피워놓고, 두꺼운 외투까지 입고 신문사에 보낼 기사를 작성하느라 애를 먹었다. 마감 뒤에는 브라질과 포르투갈, 북한 대표팀 훈련현장 취재를 해야 했고, 경기가 있는 날에는 밤에 운동장에 나가야 했다.

아프리카는 마냥 더운 나라인 줄 알았는데, 요하네스버그는 겨울이어서 숙소의 한국 주인한테 파커를 빌려입고 현장 취재를 했다. 그때야 신문 마감만 하면 됐지만, 인터넷시대인 요즘에는 현장 상황이 생길 때마다 실시간으로 기사를 출고해야 하니 현장 기자들의 고충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무엇보다 축구기자가 힘든 것은 승패가 예측할 수 없이 시시각각으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한국과 포르투갈의 3차전에서 현장기자들은 막판 멘털 붕괴에 빠졌을 게 뻔하다. 황희찬의 후반 막판 골이 터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거의 다 써놓은 기사는 순식간에 갈아 엎어야 한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우루과이와 가나의 상황도 지켜봐야 한다. 순간 스트레스는 이루 말 할 수 없다. 축구경기에서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럴 때마다 수명이 단축되는 압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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