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서귀포=장강훈기자] 아내에게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줘 기쁘다는 백석현(33·휴셈)이 끝내 포효했다.
‘노룩 퍼트’로 바람몰이를 시작해 살떨리는 선두싸움 중압감을 이겨내고 리더보드 최상단에 이름을 올렸다. 57번째 출전한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에서 거둔 감격적인 생애 첫 우승. 그것도 ‘와이어 투 와이어’(1라운드부터 최종일까지 1위 유지)로 따내 무명 설움을 한 방에 날렸다.
백석현은 21일 제주 서귀포에 있는 핀크스 골프클럽(파71·7326야드)에서 열린 SK텔레콤오픈 최종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3개, 보기 1개를 바꿔 4타를 줄였다. 최종합계 13언더파 271타로 2위 이태훈(33·DB손해보험)을 1타 차로 따돌렸다.
1타차 단독선두로 나선 최종라운드 첫 세 홀을 침착하게 파로 막아낸 백석현은 4번홀(파5) 티샷을 307야드 보낸 뒤 210야드를 남기고 한 세컨드 샷이 그린 위에 올라갔다. 13야드 앞에서 한 이글퍼트가 홀컵에 빨려들어가 우승 동력을 만든 뒤 5번홀(파3)에서도 버디를 낚아 기세를 이었다. 한때 최호성(50·금강주택)에게 공동 선두를 허용하기도 했지만, 후반 첫 세 홀에서 버디 두 개를 잡고 우승에 대한 집념을 드러냈다.
2타차 선두로 오른 18번홀(파4)에서는 티샷이 우측으로 밀려 패널티구역에 떨어졌다. 드롭 후 한 세 번째 샷도 우측으로 밀려 그린 우측 벙커에 들어갔다. 추격하던 이태훈은 두 번째 샷 만에 그린에 볼을 올려 8야드가량 남겨뒀다. 버디퍼트를 성공하면 연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위기. 백석현은 약 12야드를 남기고 한 벙커샷을 1m 이내에 안착시킨 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태훈의 버디퍼트는 홀 우측에 멈춰섰다.
신중한 표정으로 그린을 읽은 백석현은 한차례 어드레스를 푸는 등 극심한 부담감을 숨기지 못했다. 그래도 침착하게 챔피언퍼트를 성공한 뒤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포효했다. 동료들이 물세례를 퍼부으며 축하인사하자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며 생애 첫승 감격을 만끽했다.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한 백석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행복하다. 빨리 트로피받고 쉬고 싶다”며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해 12월 결혼한 신혼인데 5개월여 만에 아내에게 우승을 선물했다.
그는 “성적이 안나서 최대한 티를 안내려고 했는데, 표정이 좋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내가 내 눈치를 엄청봤다. 믿고 결혼해준 사람인데, 눈치보게 만든 게 너무 미안했다. 우승장면보고 울고 있을 것 같다. 우승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며 울컥했다.
우승 동력은 단연 ‘노룩 퍼트’다. 볼을 보지 않고 퍼트하는 독특한 기술(?)인데, 백석현은 이번대회 무기로 ‘노룩 퍼트’를 들고나왔다. 그는 “브룸스틱(최대 49인치짜리 긴 퍼터)을 쓰는데, R&A 규정에 맞지 않는 퍼터라더라. 스코티 카메론 샘플 퍼터를 들고나와 노룩 퍼트를 해봤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뒷얘기를 공개했다. 다음 대회에서는 규정에 맞는 브룸스틱으로 정상적인 퍼트를 할 계획이다.
“챔피언 퍼트 때는 손이 너무 떨려서 혼났다. 한홀씩 치르자는 마음으로 임했고, 16번홀에서 2타차 선두라는 것을 깨달은 뒤 부담감이 확 오더라. 18번홀 티샷 실수가 최악, 벙커샷이 최고의 샷”이라고 말한 백석현은 “우승 확정 순간 머리가 하얗게 변하더라. 실감도 안났다. 첫 우승한 만큼 1승에 그치지 않는 선수가 되겠다. 팬들께 내 이름을 알리게 돼 너무 기쁘다”며 환하게 웃었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