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기자] “연기는 살아온 삶이 투영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느낀 감정들이 고스란히 표출되곤 하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셀러브리티’로 4년만에 안방에 복귀한 배우 이동건은 개인의 경험이 연기에 미치는 영향을 이같이 설명했다. SNS 인플루언서의 세계를 그린 이 드라마에서 유명인(셀러브리티)들을 쥐락펴락하는 변호사 진태전을 연기한 그는 극중 아내인 윤시현(이청아 분)에게 이혼을 요구 받는다.

이같은 드라마 전개는 이동건의 개인사를 연상케 한다. 이동건은 2017년 KBS2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조윤희와 결혼 뒤 이듬해 12월 딸을 낳았지만 결혼 3년만인 지난 2020년 협의이혼했기 때문이다.

1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FNC 사옥에서 만난 이동건은 자신의 개인사와 닮은꼴인 드라마 속 캐릭터에 대해 “굳이 연결시키려 하지 않는다”면서도 “결국 제가 느낀 감정들이 나올 수 밖에 없고 그게 내가 진태전을 연기하는 이유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에둘러 설명했다.

이동건이 연기한 진태전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특권의식으로 똘똘 뭉친 빌런이다. 이동건은 진태전 캐릭터를 냉철하고 차갑게 표현해내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지난 2019년 종영한 TV조선 ‘레버리지: 사기조작단’ 이후 ‘셀러브리티’를 통해 4년만에 복귀한 이동건은 자신이 몰랐던 세상을 연기한다는 것에 대한 흥미를 느껴 이 작품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진태전은 따뜻한 남편, 능력 있는 변호사처럼 보이지만, 본인이 가진 걸 빼앗기거나 명예에 흠이 생기는 걸 견디지 못하는 일종의 ‘소시오패스’ 같은 빌런이에요. 대본을 봤는데 화려하지만 제가 잘 모르는 세상의 이야기라 흥미로웠어요.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어요. 하지만 KBS2 ‘7일의 왕비’(2017)의 연산군을 연기하며 느꼈던 감정을 생각하면서 진태전도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죠. ”

직업이 법무법인의 대표인만큼 이동건은 헤어, 의상 등 전반적인 스타일링을 꼼꼼히 신경쓰기도 했다. 그는 “전형적인 빌런의 모습을 벗어나기 위해 정장을 멋지게 소화하려 했다. 고급스럽고 화려하게 보이려 했지만 헤어스타일은 힘을 주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표현하려 했다”고 스타일링 주안점을 설명했다.

드라마의 주요 등장인물이 인플루언서인만큼 SNS가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정작 이동건은 SNS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이동건은 ‘셀러브리티’를 통해 개인 채널 개설을 고민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드라마를 촬영하며 인플루언서 세계에 대해 배웠어요. 저는 SNS에 대해 전혀 몰라요. 당근마켓 정도 겨우 해요. SNS를 시작한다고 해도 휴대전화에는 노을 사진, 산 사진밖에 없어서 뭘 올려야 할지도 막막해요. 팬들과의 소통 등 장점이 많을 것 같아 SNS를 시작하는 상상을 하기도 해요. 곧 다양한 소통을 하는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셀러브리티’는 12일 전 세계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비영어권 주간차트 1위에 올랐다. 정작 이동건은 빛의 속도로 1위에 오른 것을 체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걱정이 많았는지 제작발표회 이후 이틀을 앓았어요. 그래서 1위 실감이 나지는 않아요. 혹시 해외 나가면 사람들이 알아볼까요?(웃음) 요즘은 반응이 너무 빨리 보이는데 제 주변에는 아저씨들밖에 없어서 피드백이 느리게 왔어요. 저는 중반 정도에 등장하는데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포기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끝까지 본 사람들은 다 재밌다고 말해줬어요. 저도 이 작품을 하고 난 뒤 ‘악역을 또 한번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1998년 데뷔, 벌써 24년차 배우인 이동건은 과거 최고 시청률 57.6%를 기록한 SBS ‘파리의 연인’(2004)의 “이 안에 너 있다”라는 대사로 뭇여심을 홀리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당시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예전에는 너무 어렸어요.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많아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어요. 이제는 그와 정반대로 현장에 갈 수 있다는 것, 열심히 일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이 소중하게 느껴져요. 돌아보면 ‘파리의 연인’은 저에게 큰 행운이었고, 요새는 그 행운을 감사하면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 출산, 이혼, 그리고 긴 공백기를 거친 이동건은 이제 자신이 누렸던 것들을 내려놓고 한층 겸허해졌다. 다만 연기에 대한 ‘욕심’만큼은 내려놓지 않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24년 동안 연기를 꾸준히 해온 원동력은 ‘욕심’인 것 같아요. 매번 더 연기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지금까지도 연기를 하고 있어요. ‘셀러브리티’ 인기가 심상치 않아 기분 좋은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이 작품을 통해 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오랫동안 시청자들과 만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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