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박효실기자] 아내 앞에 서면 조개처럼 입을 꽉 다무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향해 분노로 소리치고 오열하는 아내가 등장했다.
16일 방송된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에서 택시기사와 승객으로 만나 결혼한 13년차 부부가 의뢰인으로 출연했다. 8세 연상의 남편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아내는 “잘 생겨서 반했다”라고 말했다. 재혼 가정인 두 사람은 결혼식을 생략한 채 4남매를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결혼식에 한이 맺힌 아내를 위해 올해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도 갈등이 심해져 방송출연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의뢰인 가족의 아침풍경이 그려진 가운데, 새벽 4시반에 일어난 아내는 네 아이의 아침밥을 챙기고 아이들 등교와 등원까지 동분서주했다. 게다가 셋째는 지적장애로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어 자동차로 40분 거리의 학교를 데려다줘야 했다. 첫째 역시 지적장애가 있어 엄마의 손이 많이 가는 상황.
집에 와서도 아내는 밑반찬 준비, 청소, 빨래 등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그제서야 자다가 일어난 남편은 믹스커피를 한잔 한 뒤 말없이 앉아있었다. 아내는 “내가 말을 안 꺼내면 하루 종일 대화를 안 한다. 말을 해도 답이 안 오니까 화가 난다”라고 했고, 남편은 “아내가 내가 대답하기 힘든 걸 자꾸 물어본다. 그래서 답을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아내는 “처음 만나 결혼할 때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결혼식을 못했다. 그 다음에도 식을 하려고 하면 아이가 계속 생겨서 못 했다. 그런데 나도 여자고 웨딩드레스 입고 결혼식도 하고 싶은데 그걸 남편이 잊어버리고 사는 것같다. ‘거기에 돈을 왜 써야해’ 라고 생각하는 것같다”라고 말했다.
말이 도통 없던 남편은 새벽에 택시운전을 나가서는 손님들과 쾌활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밤새 운전을 하고 새벽 5시에 퇴근해 어둠 속에서 쟁반에 식사를 챙겨든 남편은 자연스럽게 화장실로 향해 놀라움을 안겼다.
남편은 “화장실이 솔직히 편하다. 밥먹고 커피 마시고 담배까지 필 수 있고 너무 편하다”면서 화장실 바닥에 반찬을 늘어놓은 채 밥을 먹었다. 상상도 못할 남편의 모습에 MC 소유진과 문세윤은 “너무 놀랐다”라며 충격을 받았다.
남편은 “내가 부스럭거리면 아내가 깰까봐 하다 보니까”라고 말했지만 아내는 “남편 방이 따로 있다. 아이들 안 자는 방이 있는데. 저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고 화도 난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쑥쓰러워하던 남편은 “내가 담배를 피다 보니까 화장실이 편하다”라고 말했다.
오은영 박사는 “청소년기 아이들이 부모 잔소리가 듣기 싫을 때 많이 하는 방법이 화장실에 간다. 본인만의 공간이 필요할 때 하는 행동이다. 혹시 아내가 말을 시킬까봐 피해서 가는 것이기도 하냐”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인 남편은 “혼자 하루를 정리하는 멀티 공간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오 박사가 “남편은 대화할 때 정답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대화에 중요한 건 반응이다”라고 하자 남편은 “아내가 답을 정해놓고 묻는데, 내가 이상한 답을 하면 (결혼생활이) 깨질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답이 안 나오니까 아무 말도 못 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아내가 오래 기다렸던 웨딩촬영 날, 들뜬 아내와 달리 남편은 시종 무덤덤해 아내의 속을 긁었다. 심지어 드레스를 입고 나온 아내가 “나 어때?”라고 물어도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아내는 “사진작가가 800장을 보내주셨는데, 10장 빼고 남편 표정이 다 똑같은 무표정이었다”라고 속상함을 토로했다.
그날 밤 친구를 만난 아내가 고혈압에 당뇨가 있는 남편의 종합검진을 위해 남몰래 적금을 부었다고 하자 남편은 눈물을 쏟았다. 친구가 “대체 남편 어디가 그렇게 좋냐”고 묻자 아내는 “너무너무 좋았어. 내가 그때 아이 잃고 힘든 때였잖아”라고 말했다.
이어 스튜디오에서 아내는 “이혼 가정에서 자랐다. 일찍 가정을 꾸리고 싶어 가출해서 지내다가 아이를 가졌는데, 십대 때라 아무것도 몰랐다. 이혼 후 전남편이 데리고 있던 딸이 영양실조로 죽었다”라며 눈물을 쏟았다.
상처만 남은 첫 결혼 이후 현재의 남편을 만난 아내는 평생 못 올려본 결혼식을 통해 혼인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싶은 거라고 오 박사는 설명했다. 마음을 표현하기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오 박사는 “표현도 하다보면 익숙해진다. 진심을 전달하는 게 정답이다”라면서 “또 남편에게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 건 알겠지만 화장실과 결별하시라”라고 조언했다.
아내가 혹여 이혼하자고 할까봐 두려움에 많은 것을 회피해온 남편은 이날 아내를 위해 용기를 내 프러포즈를 해 감동을 안겼다. 미리 준비해온 꽃다발을 들고 스튜디오에서 무릎을 꿇은 남편의 모습에 아내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
남편은 “못난 사람 만나 너무 고생 많았다. 고맙고 고맙다. 사랑합니다. 저랑 결혼해 주세요”라며 정식으로 프러포즈해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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