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골프의 레전드, 베른하르트 랑거는 67세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올해 마지막으로 마스터스에 출전한다고 PGA 홈페이지에 소식을 알려왔다. 매년 4월에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열리는 PGA 투어 메이저대회 마스터스는 골퍼들에게 꿈의 무대이다. 유럽 투어를 주 무대로 뛰며 42승을 거둔 랑거는 마스터스에서 2번의 우승을 거뒀고, 메이저대회 정상과 세계 1위에 오른 최초의 독일 선수이다. 대회 우승 자격으로 마스터스 평생 출전권을 획득하여 지난해까지 총 40번이나 마스터스에 참여한 바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60세 전후로 은퇴를 하고, 프로 선수들은 종목에 상관없이 40세 전후로 일선에서 물러나 지도자의 길을 걷는 과정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골프는 은퇴도 없고, 정년도 없다.

랑거가 마스터스에 출전하면서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그 속에 정답이 들어있다. “다른 선수들이 9번 아이언으로 온그린을 시도할 때, 나는 3번 아이언이나 2번 하이브리드를 잡아서 올리면 된다.” 이는 골프에 있어서 거리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방증이고, 투어를 뛰는 프로나 아마추어, 주말 골퍼들이 항상 마음속 깊이 새겨들어야 할 진리이다.

랑거가 올해 마스터스에 출전하면 컷오프될 확률은 높다. 하지만 67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프로들의 로망인 마스터스에 도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역사적인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국내에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회원제 골프장에 가보면, 70세 훌쩍 넘으신 분들을 많이 보게 된다.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시거나 지병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 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라운딩하시는 모습을 접할 때면, 골프는 가족과 더불어 평생을 함께 간다는 옛말에 공감이 간다.

나이가 들수록 골프가 힘들고 멀어지는 이유는 체력적인 문제도 있지만, 경제적인 부분과 인간관계의 소홀함을 무시할 수 없다. 세월이 갈수록 몸에서는 고장 신호등 빨간불이 들어오고, 소득과 수입은 전성기 대비 줄어들며, 친구들과 지인들은 각자도생의 길로 사라져 버린다.

다시 말해 건강, 돈, 동반자 이 3가지가 삼위일체 되어야만 평생을 잔디를 밟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골퍼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얘기라고 생각하겠지만, 젊음은 항상 머물러 있지 않고 빠르게 지나가 버려 어느새 노년의 자아를 발견할 때쯤이면 몸소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동년배 지인 중에 프로급 실력을 갖춘 골퍼가 갑자기 심근경색이 와서 필드를 떠났다. 주식과 코인에 올인하던 친구도 개인파산으로 필드에서 사라져 버렸고, 동반자들로부터 비매너로 원성이 자자했던 선배는 사람이 싫다고 하면서 골프를 끊고 산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골프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도 평생 할 수는 없다. 처음 골프에 입문해서는 열정을 가지고 미친 듯이 비거리도 늘리고, 싱글도 해보고, 필드에서 살다시피 한다. 그러다 세월이 가서 때가 되면, 경제적인 부담 없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반자들과 함께 스코어에 연연하지 않고 즐겁게 라운딩하는 것이 골프의 최고의 선이며 가치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목련꽃 필 무렵, 67세 올드보이 랑거가 마스터스에서 신화를 다시 한번 써주길 기대해 보면서 국내 시니어 프로들도 올 한해 각종 투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기를 기원한다. <골프 칼럼니스트, ‘너나 잘 치셔요’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