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 기자] “기상 악화로 공연을 중간에 중단한 건 데뷔 24년만에 처음입니다.”
20일 오후 서울대공원 주차광장에서 만난 가수 싸이의 얼굴은 복잡해보였다. 싸이의 대표적인 공연 브랜드 ‘흠뻑쇼2024’ 과천 공연의 첫날이었다. 시작부터 엄청난 양의 물을 퍼부으며 분위기를 한참 고조시키고 있었다.
히트곡 ‘연예인’을 부른 뒤 게스트 제시의 무대가 시작됐다. 자신의 히트곡 2곡을 연달아 부른 제시가 관객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나누던 무렵, 갑자기 하늘에서 우박같은 비가 쏟아졌다. ‘흠뻑쇼’에서 뿌리는 대량의 물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폭우였다.
설상가상 강풍까지 불었다. 그때까지 주최 측이 제공한 우비를 입지 않았던 일부 관객들은 허둥지둥 우비를 챙겨입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비 때문에 고개를 들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무대 안쪽으로 몸을 피한 제시가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관객을 안정시켰다. 약 3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싸이가 무대 중간으로 나왔다.
그는 “이런 일은 데뷔 24년만에 처음”이라며 “공연을 중단해야 할 것 같다. 시간을 내서 와주신 분들에게 정말 죄송하다. 빠른 시일 내 공연재개 일정을 잡을테니 현장에 온 관객들은 티켓을 버리지 말고 필히 소지해달라. 혹여 환불을 원하시는 분들은 환불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우산도 없이 맨몸으로 무대 위에 올라온 싸이는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90도로 관객에게 인사했다. 그런 싸이의 모습을 지켜본 관객들 역시 누구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퇴장하는 관객들은 “괜찮아, 괜찮아”라며 떼창으로 위로를 전했다.
실상 이날 가장 마음이 무거운 사람은 싸이 자신이다. ‘흠뻑쇼’는 약 반년에 걸친 장기간의 세심한 기획과 엄청난 물량공세로 준비한다.
입소문 덕분에 MZ세대 관객들 사이에서는 한번쯤 보고 싶어하는 공연으로 손꼽는다. 그만큼 티켓 구하기도 어려워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 전쟁을 벌여야 한다.
올해는 서울 잠실 주경기장 일대가 공사로 대관이 어려워져 서울은 투어 지역에서 제외됐다. 대신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과천 공연에 관객이 몰렸다. 이런 관객들에게 최상의 만족을 안기기 위해 싸이 자신 뿐만 아니라 모든 스태프들이 만전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자연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다. 싸이는 뜸 들이지 않았다. 그는 관객들에게 정중히 사과했고 안전한 귀가를 도왔다.
4호선 대공원역으로 한꺼번에 인파가 몰리자 지하철 공사, 과천시청, 서울대공원, 소방서, 경찰 등 유관기관 직원들이 역사 앞을 통제했다. 관객들을 줄 세웠고 지하철이 올 때마다 일부 관객만 역사 안으로 들여보내 혹시나 있을 안전사고를 방지했다. 미끄러움 때문에 절대 뛰면 안 되며 난간을 잡고 천천히 걸으라고 반복해서 전달했다.
싸이는 이날 자신의 개인 SNS에 “예기치 못한 기상 상황에 공연을 중단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관객분들의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며 “침착하게 대처해주신 관객들께 말로는 부족한 너무 너무 큰 감사드린다. 안전한 귀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준 우리 스태프들, 그리고 과천시청, 경찰서, 소방서, 서울대공원 및 모든 유관기관 분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싸이는 20일 자정까지 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싸이 측 관계자는 “밤 늦게까지 현장을 정리하고 21일 공연에 대한 대책 회의를 했다”며 “다행히 21일은 6시 이후 비가 그친다고 예보돼 공연을 진행할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mulga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