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 기자] “언니! 우리 술 한 잔 할래요?”
무표정한 중년 여성에게 생기발랄한 젊은 여성이 17년산 고급위스키를 건넨다. 여자는 비싼 위스키를 얼음이 담긴 디켄터에 통째 들이붓고 쉐이킹한다. “난 이렇게 마시는 게 좋더라.”
7일 개봉하는 전도연 주연 영화 ‘리볼버’는 값비싼 위스키를 소주마냥 투박하게 마시는 여성들처럼 “인생살이 별 거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전작 ‘무뢰한’(2015)에서 밑바닥 인생들의 삶을 끈적끈적하게 묘사했던 오승욱 감독은 ‘리볼버’에서 모든 것을 다 잃은 여자의 복수극을 매끈하고 차가운 위스키 마냥 표현했다.
영화는 전직 형사 수영(전도연 분)이 교도소에서 출소하면서 시작한다. 수영은 잘 나가는 경찰이었다. 대학에서 검도부 동아리였던 그는 예쁘장한 외모 덕분에 경찰 홍보부 아나운서로 일하며 상사인 임석용(이정재 분)과 교제했다.
꿈에 그리던 내 집 마련까지 하며 기쁨에 차있던 수영은 유흥업소 마약사건에 연루된 석용 때문에 업소 관계자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면서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결국 그는 7억이라는 거액의 보상금, 그리고 출소 후 안정된 직장을 약속받는 대가로 비리를 혼자 뒤집어 쓰게 된다.
하지만 형을 마친 수영을 기다리는 사람은 경찰 비리를 캤던 검사, 그리고 전 남자친구 임석용(이정재 분)이 보냈다는 마담 정윤선(임지연 분) 뿐이다. 집도, 명예도, 직장도 모두 잃은 수영은 자신에게 돈과 직장을 약속한 투자회사 실세 남자 앤디(지창욱)와 수감 전 당첨됐던 아파트를 되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영화는 감독의 전작 ‘무뢰한’과 비슷한 듯 결이 다르다. ‘무뢰한’의 김혜경이 오직 사랑 때문에 고급 유흥업소 출신이라는 명성과 재산을 버린 채 무뢰한들의 수모를 버티고 견뎠다면 수영은 돈 때문에 잃어버린 명성과 사망한 옛 연인에 대한 미련을 잊는다.
‘무뢰한’에서 벼랑 끝에 다다른 작부연기를 실감나게 표현했던 전도연은 ‘리볼버’에서 얼굴의 표정을 지운다. 50도 도수에 달하는 위스키를 얼음에 섞어 마시듯 차가운 표정으로 들끓는 분노를 잠재운 수영 그 자체가 돼 스크린을 지배한다.
냉기 어린 전도연의 무표정을 바탕 삼아 임지연의 생동감 넘치는 마담 연기와 지창욱의 개차반 망나니 연기가 빛을 발한다. 임지연이 연기한 윤선은 거액의 빚 때문에 수영의 적들에게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는 인물이다.
수영의 죽은 연인인 임석용과 한때 내연관계였다. 하지만 연적사이인 수영에게 “언니”라며 친근함을 표현하고 그의 ‘에브리띵’이 좋다며 은근슬쩍 돕는 임지연의 이중적인 모습은 무채색 일변도의 영화에 색을 불어넣는다.
수영의 뒤통수를 친 앤디 역의 지창욱은 이 영화의 메인 빌런이다. 마약중독자인 앤디는 온 몸을 문신으로 뒤덮었고 입에 욕을 달고 산다. 약자에게는 돈을 앞세워 강하지만 강자의 주먹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그의 모습은 영화의 웃음을 담당한다.
여기에 임석용 역의 이정재, 앤디의 누나이자 이스턴 프로미스의 대표 그레이스 역의 전혜진의 특별출연이 극의 무게감을 더했다.
영화 제목은 ‘리볼버’지만 영화 속 총은 거들 뿐이다. 전도연은 총의 도움 없이 삼단봉만으로 빌런들을 하나하나 격파해 나간다. 출소 뒤 온더록스로 우아하게 위스키를 마셨던 그가 얼음을 가득 탄 위스키를 원샷하듯 오로지 자기 몫을 찾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삼단봉을 휘두른다. 그의 연기가 그 자체로 ‘라볼버’의 총알이었다.
영화는 술로 시작해 술로 마무리한다. 영화 말미, 수영이 꽁치구이 안주에 털어 넣는 소주 한 잔은 그 자체로 이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한다. “술이 당기는 영화”라는 임지연의 자신감 넘치는 소개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mulga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