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1. 일촉즉발의 상황. 엄마 용례(문소리 분)와 정년(김태리 분)이 거하게 한 판 붙었다. 드센 두 여자 사이에서 새우 등 터지는 건 둘의 마음을 모두 이해하는 큰 딸 정자(오경화 분)다. “소리를 하고 싶다”는 정년과 “소리만큼은 안 된다”는 용례를 쳐다보는 정자의 눈에는 두려움과 긴장이 가득 서려 있다. 표정이나 근육을 강하게 쓰지도 않았다. 그저 바라만 볼 뿐인데, 눈에 모든 감정이 담겨 있다. 정자의 눈 덕분에 긴장감이 확 살아났다. ‘뭔가 특별히 하지 않는 좋은 연기’의 표본이다.

#.2 정년은 정자 덕분에 서울에 갈 기회를 얻었다. 헤어지기 전 두 사람의 대화는 뭉클하다. “꿈이 있다는 것도 다 니 복이다”라며 동생의 꿈을 응원하는 정자 덕분이다. 꼭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는 정년이에게 “성공 못 혀도 서럽고 집 생각 나면 꼭 돌와와잉. 내가 밤에 문 안 잠글랑께”라는 대사에선 눈물이 왈칵 터진다. 자매의 우정을 넘은 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존중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수백억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에 타이틀롤 김태리와 정은채, 문소리, 라미란, 신예은 등 뛰어난 배우들이 대거 참여한 tvN ‘정년이’ 1회에서 감동을 일으킨 배우는 비교적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오경화다. 감정을 억눌러가며 꾹꾹 담아 표현하는 점에서 엄청난 연기 내공이 느껴졌다.

용례에게 크게 혼날 것을 걱정하는 정년에게 “난 니처럼 매벌지 않으니께 괜찬해”라고 말한 뒤 곧 동생과 헤어질 생각에 왈칵 올라오는 슬픔을 표현하는 장면 역시 놀랍다. 정년의 눈을 쳐다보지 않고 엉뚱한 곳에 시선을 두는 것만으로 밀려오는 슬픔을 그려냈다. 절제해서 표현한 덕에 시청자가 느끼는 감정의 진폭은 더 크다.

대부분 배우가 연극영화과를 통해 배우의 길을 걷는 반면, 오경화는 이공계 계열 출신이다. MBC ‘해를 품은 달’(2012)에 나온 장영남을 보고 그간의 삶을 청산하고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영화 ‘걷기왕’(2016)으로 데뷔한 뒤 tvN ‘하이에나’(2020)에서 정금자(김혜수 분)의 비서 이지은으로 분하며 대중의 눈도장을 찍었다. 장태유 감독이 끝까지 공들인 이지은 역에 엄청난 경쟁을 뚫고 캐스팅된 일화는 유명하다.

소속사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정년이’가 방영된 후 다양한 취재진으로부터 오경화에 대한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비록 1회분이지만, 워낙 뛰어난 연기를 한 덕에 관심이 급상승한 모양새다. 그를 향한 호평과 칭찬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주위가 들뜬 것과 달리 오경화는 차분하다. 좋은 연기로 비친 건 좋은 스태프와 제작진, 동료 배우들과 호흡에서 나온 것이라며 공을 돌리고 있다는 후문.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 욕심부리지 않는 마음에서 무언가 특별히 하지 않는 좋은 연기가 나오는 듯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연기에 빈틈이 없는 ‘정년이’에서 오경화도 빛을 내고 있다. 정자가 어떤 역할인지 정확히 알고 연기하는 것 같다. 꿈을 펼치려는 정년이 뒤에 자연스럽게 머물러있다. 시청자가 그 지점을 정확히 보고 열광하는 것”이라며 “주연만큼 조연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배우”라고 호평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