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이리도 뻔뻔할 수 있을까. 낯짝도 두껍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MBC 기상캐스터 故 오요안나가 안타깝게 사망한 뒤 한참이 지나 재직 시절 겪은 ‘집단 괴롭힘’ 정황이 속속 나오고 있음에도, MBC는 도의적인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MBC 흔들기’라는 오만한 태도가 담긴 해명 후 아무런 대응이 없다. 열심히 쌓은 신뢰를 스스로 갉아먹는 형태다.
故 오요안나를 향한 동정 어린 시선이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지고 있다. 기상캐스터 팀 내에서 모멸감이 들 수밖에 없는 ‘집단 린치’를 당한 셈이다. 고인을 제외한 단체 채팅방이 있었고, 심지어 그 방에서 어떤 발언이 오가는지도 확인했다. 고인과 친분이 있는 장성규에게 이간질한 정황도 포착됐다. 유족은 고인의 휴대전화 속 내용을 모두 확인했다. 고인이 생전 어떤 심정으로 회사에 다녔는지 알게 됐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은 유족에게도 전달됐으리라.

해명이 가관이다. 소속 직원이 고통스럽게 회사에 다닌 것을 모르는 점에 당당했다. 부끄러움이 없었다. “고인이 힘들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는 말로 책임에서 피하려 했다. “고인의 유서를 갖고 있지 않다”는 건 그만큼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인데, 스스로 내뱉었다.
“고인이 생전에 밝힌 MBC 관계자 4명은 알려주길 바란다”는 표현도 웃지 못할 말이다. 내부적으로 조사하면 될 일을 왜 공식적으로 선포했는지 의문이다. 가해자들이 저지른 추악한 민낯이 속속 공개되고 있음에도 MBC는 ‘MBC 흔들기’라는 얼토당토않은 말로 대응했다.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건 오히려 MBC다.
고인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철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가해자로 꼽히는 사람들을 무조건 악마화할 이유도 없다.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으면 될 뿐이다. MBC 역시 회사 차원의 잘못이 있다면, 반성하고 유족에 정서적·금전적 책임을 지으려 노력하면 된다. 유족이 바라는 건 철저한 진상조사와 도의적인 책임일 테다.
MBC는 섣불리 칼을 빼든 모양새다. 아직 조사 결과도 나오기 전인데, 마치 아무 잘못이 없는 듯 대응했다. MBC 말대로 누군가 흔든 것일까. 스스로 흔든 꼴밖에 되지 않는다. MBC는 잘못이 없다는 거만한 태도만 남을 뿐이다.

방송인 장성규가 오히려 더 현명했다. 굴지의 기업이 개인의 그릇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장성규는 고인을 괴롭힌 가해자로 꼽히는 김가영 기상캐스터가 전한 말을 생전 고인에게 옮겼다는 이유로 지나친 악성 댓글을 받고 있다. 자식에게까지 저주에 가까운 말을 들었다. 눈이 뒤집힐 만한 상황이지만 “고인의 억울함이 풀리기 전에 저의 작은 억울함을 풀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순서라고 생각한다”며 악성 댓글을 자제해달라고만 했다. 장성규의 언행에서 고인을 향한 진정성이 더 느껴진다.
MBC가 분노를 일으킬만한 해명을 남기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 고인이 어떤 괴롭힘을 당했는지 매일 매일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MBC 소속원들의 지나친 갑질, 감정적인 괴롭힘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직도 ‘MBC 흔들기’라고 생각하는 걸까. 여전히 말이 없다. 분노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계엄·탄핵으로 이어지는 혼란한 정국에서 MBC는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메스 역할을 톡톡히 했다. 보도국에 신뢰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 자체를 폄훼하진 않는다. 다만, 자신에게도 썩은 부위가 있다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메스를 들어야 한다. 자신의 환부는 도려낼 줄 모르는 장님은 아니길 바란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