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와 다른 또 다른 목소리…10년 기다림에 화답 ‘흥행궤도’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범한 일상에 스며든 ‘Guy(이하 그)’와 ‘Girl(이하 그녀)’. 어렸기에 어설펐던 과거의 사랑은 잔인함으로 남았지만, 예고 없이 찾아온 또 다른 만남을 통해 상처를 치유한다. 아픈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음악’이 공통분모로 자리했기에 가능하다.
뮤지컬 ‘원스’가 2014년 초연과 2015년 내한 공연 이후 10년 만에 돌아왔다. 충분히 여러 차례 무대에 오르고도 남을 작품이지만, 보통의 뮤지컬과 다른 형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쉽사리 성사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직접 악기를 연주하며 연기·노래·춤까지 가능한 배우들을 한 작품에 모으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
‘원스’는 오케스트라 또는 밴드 없이 배우들이 무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끈다. 지휘자도 없어, 배우들 간 호흡이 단 한 박자라도 맞지 않으면 그날 공연은 완전히 삼천포로 빠질 수 있다. 하나의 세트에서 한정된 공간들로 장면 전환이 이뤄지기 때문에 자칫 합주 또는 동선이 꼬인다면 삼류로 곤두박질칠 것이다.
그만큼 모든 부분이 까다로운 작업이다. 하지만 이 어려운 걸 한국의 ‘원스’ 팀이 해내고 있다. 흠잡을 데 없는 배우들의 진행 능력과 감정 표출, 더불어 잔잔한 아름다움에서 예상치 못한 개그로 감동과 웃음을 동시에 선사한다. 지난 19일 개막 이후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흥행궤도에 올랐다.

◇ 공연 10분 전 프리쇼로 이미 가슴은 작품 속으로 스며들어
뮤지컬 ‘원스’는 2007년 동명의 인디 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Falling Slowly’가 대표곡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소박한 술집에서 음악에 이끌려 인생과 사랑을 깨닫는 두 남녀의 이야기다. 현실에 부딪혀 삶의 원동력(음악)을 스스로 놓으려 할 때 운명처럼 찾아온 인연 덕분에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
작품 속 공간은 단순한 술집이 아니다. 내면의 압박으로 인해 생긴 벽을 깨뜨리는 자유를 상징한다. 술 마시며 시끄럽게 떠드는 곳이 아닌 남녀노소 누구나 음악으로 소통하는 안식처다. 그래서 제작진과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작품의 구성원 돼 더 자유롭게 공연을 즐기라고 강조한다.
무대는 본 공연 10분 전부터 펼쳐지는 프리쇼부터 시작된다. 관객들은 직접 무대에 올라 매 회 다르게 선보이는 배우들의 즉흥 연주에 맞춰 음료를 마시면서 노래하고 춤출 수 있다. 이때부터 장면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게 된다.
한껏 흥을 돋운 후 노신사의 첫사랑에 대한 추억 ‘Raglan Road’와 떠나간 연인을 마음으로는 놓아주지 못하면서도 이별을 고하는 ‘그’의 ‘Leave’가 울려 퍼진다. 옛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구슬프게 이야기한다. ‘깊이 빠져버린 그 감정 때문에 행복도 내던졌다’는 앞으로 펼쳐질 드라마를 예고한다.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Falling Slowly’는 두 번 노래한다. 초반 떠나간 이에 대한 미련을 토해낸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와 ‘그녀’가 서로를 향한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고 각자의 항해를 시작하는 모습으로 여운을 남긴다.

◇ 잊고 싶은 또는 잊어야만 하는 사랑 ‘이 또한 지나가리오’
작품은 화려한 무대와 의상, 오케스트라가 필요하지 않다. 음악으로 연결된,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행위예술의 결정체를 보여준다.
노래가 시작되면 깊고 긴 호흡으로 강한 몰입감을 더한다. 겉으로 표현하지 못한 속마음을 잔잔하면서도 가슴 저린 노래로 대신한다. 어느 순간에는 심장과 손발이 박자에 맞춰 저절로 춤추게 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여기에 배우들의 손짓 하나하나가 ‘그(녀)’의 감정을 표현해 내면의 울림을 전한다.
‘그(녀)’는 “살아가려면 사랑해야 한다”며 “음악이 없는 도시는 도시가 아니야”라고 말한다. 그 존재가 무엇이든 ‘그(녀)’에게는 음악이 살아가는 이유다. 자신이 가장 잘 알면서도 그동안 그토록 부정했던 감정을 음악으로써 깨닫는다.
추억으로 남기기엔 인생을 바꾼 음악. ‘그(녀)’는 서로를 만난 순간을 잠시 스쳐 간 사랑으로 추억하겠지만,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오늘도 그리움에 사무친 악보를 그릴 것이다.
사랑에 대한 통찰로 죽었던 연애 세포를 깨운다는 ‘원스’는 오는 5월31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공연된다. ‘그’ 역 윤형렬·이충주·한승윤, ‘그녀’ 역 박지연·이예은, ‘DA(다)’ 역 박지일·이정열, ‘빌리’ 역 김진수 등이 출연한다.

gio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