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세력 낙하산은 안 된다”… EBS, 신동호 사장 집단 거부 사태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교육공영방송 EBS가 사상 초유의 사태에 휘말렸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신동호 신임 사장 임명에 반발해, EBS 방송제작본부장을 포함한 현직 간부 52명이 집단 보직 사퇴를 선언하며 거센 저항에 나섰다. 전체 보직 간부 54명 중 감사실 등을 제외한 사실상 전 간부가 참여한 이번 선언은 EBS 역사상 유례없는 사태다.
EBS 보직 간부들은 26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신임 신동호 사장을 EBS의 사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이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뜻으로 현직 보직 간부 54명 중 52명이 보직에서 사퇴할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EBS는 누구의 정치적 소유물도 아니며, 국민 모두의 방송이자 미래세대를 위한 공적 자산”이라며 “공영방송인으로서의 양심과 책임에 따라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고 행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임명 과정의 정당성은 법적 논란 중심에 서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5인의 합의제 기구지만, 현재는 이진숙 위원장과 1인의 2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진행된 신동호 사장 임명은 절차적 정당성과 법적 타당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대법원은 지난 13일, 유사한 상황에서 내려진 MBC 방문진 이사 임명에 대해 “2인 체제 의결은 위법”이라며 효력 정지를 확정한 바 있다. 전임 김유열 EBS 사장은 “이런 방식의 임명은 EBS의 법적 정통성과 공영성 자체를 흔드는 심각한 사안”이라며 집행정지 신청과 본안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EBS 간부진은 성명을 통해 “방통위의 위법 논란 속 사장 선임 강행은 EBS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공영방송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EBS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규탄했다.
보직 간부들은 “국민적 우려와 내부 반발을 끝내 외면한 채 사장을 강행 임명한 행위는 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위협이며, 교육방송 EBS를 정치 도구로 전락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신동호 신임 사장은 MBC 아나운서 출신으로, 아나운서1부장·국장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32번에 이름을 올렸고, 선거대책위 대변인과 국민의힘 당무위원으로 활동하며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이후 2023년에는 EBS 이사를 역임했다.
공영방송 수장으로서의 자격 논란은 여기서 비롯된다. 방송보다 정치 이력이 더 부각되는 인사라는 점에서, 중립성과 공공성을 중시하는 교육방송 EBS의 정체성과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EBS는 TV수신료 의존도(5.8%)가 낮고, 정부 보조금(31%)과 자체 수익(63%)으로 운영되는 재정적으로도 매우 취약한 구조다. 공영성 침해와 정치 외압은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 김유열 전 사장은 “지금이라도 임명 효력을 잠정 정지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혼란과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며 법원의 빠른 결단을 호소했다.
사장 한 명을 두고 벌어지는 초유의 내홍. 그러나 이번 사태는 단순한 인사 반발이 아닌, “공영방송이 누구의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다시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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