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글·사진 | 순창=원성윤 기자] 강순옥(78) 명인을 보면 세 번 놀란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걸맞지 않은 나이에 눈이 번쩍 뜨인다. 알싸하면서 깊은 고추장 맛에 정신이 든다. 드넓게 펼쳐진 장독대를 보고 나선 이곳이 바로 순창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강순옥 명인이 만든 장아찌는 알싸한 끝맛이 일품이다. 매실, 취나물, 더덕, 오이 등으로 만든 장아찌는 말 그대로 밥도둑이다. 깊은 장맛과 재료가 어우러져 앙상블을 이룬다. 한입 베어 물면 고추장의 단맛과 매콤함이 스며들고, 두 입째 씹으면 숙성된 재료와 양념이 입맛을 돋운다.

모든 재료가 국내산이다. 강순옥 명인은 “수입산이나 농약을 친 게 친환경보다 물건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재료를 쓰는 게 내 임무”라며 고집스레 지켜온 지난 세월을 웅변했다.
장류가 순창에서 잘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지형과 기후 특성 덕분이다. 전북 내륙에 섬진강을 끼고 있다. 습한 분지 지형이라 발효에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다. 다른 고추장에 비해서 장맛이 깊고 빛깔 또한 고운 이유다. 순창발효관광재단 선윤숙 대표는 “다른 지역에 가면 순창에서 담근 고추장 맛이 안 난다. 섬진강 물과 지역 특성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막걸리 역시 발효를 말 할때 빼놓을 수 없다. 순창 주택가 사이 자리한 ‘지란지교’는 최근 3년 사이 주목받고 있는 프리미엄 막걸리 생산 기지다. 맛을 보면 처음부터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과일향이 입 전체에 퍼진다. 새콤한 포도향이 침샘을 자극한다. 달콤한 첫 맛과 상큼한 뒷맛이 서로 좋은 밸런스를 이룬다. 100일 동안의 발효와 90일간의 숙성이 깊은 술맛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술 종류도 다양하다. 무화과 탁주, 캐모마일 탁주를 비롯해 약주까지 다채롭게 빚어낸다. 기계를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대량 생산을 지양한다. 백화점, 대기업에서 대량 유통 제안이 숱하게 왔지만 다 물렸다. 박리다매보다 품질을 지키겠단 주인장의 뚝심이 엿보인다. 임숙주 대표의 이름마저 흥미롭다. 익을 숙(熟), 술 주(酒)다. 임 대표는 “인생은 이름을 따라간다. 양조인 길은 내 운명”이라고 웃어 보였다.


막걸리와 어울리는 고추장불고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원일 셰프가 개발하고, 쯔양이 12분을 먹고 간 ‘해 뜨는 집’ 고기 역시 순창고추장으로 고기를 버무렸다. 술꾼들이 지나치기 어려운 안주다. 보성에서 녹차 먹인 돼지를 주로 써 야들야들한 돼지 식감이 일품이다. 거하게 차린 한정식도 기가 막힌다. 산경가든은 서울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4인, 7만6000원)에 꼬막, 불고기 등이 나와 든든하게 배를 채운다.
강천산 군립공원이 선사하는 자연 풍광은 순창의 화룡점정이다. 깊은 계곡과 맑은 물, 기암괴석과 절벽이 어우러져 있다. 인근 내장산에 비해 전국적으로 이름은 덜 알려졌지만, 순창에선 단풍 명소로 명성이 자자하다. 1981년 전국 최초 군립공원으로 지정돼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린다. 옥호봉, 신선대, 거북바위, 구름다리 등 봄의 정취가 관광객에게 손짓한다. socool@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