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호구(虎口)’. 여러 뜻이 있지만, KBO리그에서는 ‘어수룩해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중용되고 있다. 마치 심야 공습하듯 경선을 거쳐 선출된 대통령 후보를 교체하는 시대라 크게 놀랍지는 않다. 대선후보를 교체한 정당에 적을 둔 사람들은 하나같이 상대를 호구로 보는 것 같다.
창원특례시와 창원시설공단은 9일 오후 “창원NC파크 내 시설물 정비를 18일까지 마칠 계획”이라며 “조속한 재개장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기습 발표했다. 전날 NC가 홈구장인 창원NC파크 재개장 시점을 확정할 때까지 울산문수구장을 대체 구장으로 쓰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긴급조치인 셈이다.

NC가 대체구장을 물색한 건 국토교통부의 발표 탓이다. 국토부는 2일 창원구장 안전조치 이행점검 회의에서 “구장에 대한 정밀 안전 점검이 필요하다. 진단결과를 시설물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에 보고하고, 사조위가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면 재개장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정밀진단은 사망사고를 낸 구조물뿐만 아니라 태풍·지진 등 자연재해에 대한 안전점검까지 해야 해 6개월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다. 사실상 시즌 내 재개장이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 이유다.

가뜩이나 상권이 침체해 신음하던 창원구장 인근 상인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일각에서는 NC가 이참에 연고지를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지금은 경상남도지사인 박완수 전 통합창원시장이 새 구장 건립 위치와 비용을 두고 말바꾸기를 거듭하던 2010년대 초반의 악몽이 떠오른 것도 연고지 이전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제기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울산광역시는 야구단 유치에 꽤 적극적인 입장이다. 광역시 중 야구단이 없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고, 축구(울산 HD) 농구(울산 현대모비스) 등 연고지 구단이 지역경제에 끼치는 영향과 지자체 이미지 개선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체득했기 때문이다. NC가 울산에 임시로 둥지를 트면, 이를 마중물 삼아 눌러 앉히려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곳곳에서 나왔다. 야구단의 연고지 이전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기류가 예상과 달리 흐르자 국토부가 먼저 말을 바꿨다. 국토부는 8일 오후 늦게 “재개장 여부는 시 또는 시·시설공단·구단이 참여하는 합동대책반이 결정할 사안”이라는 취지를 담은 공문을 보냈다. 긴급안전점검 결과 B등급(양호)을 받았고, 인사사고로 이어진 외부 마감재를 모두 철거해 사실상 안전상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뒷얘기도 흘러 나왔다.

국토부가 한발 물러서자 창원시는 기다렸다는 듯 “18일까지 시설물 정비를 마칠 것”이라고 기습발표했다. 광고판 고정 상태 불량, 관중석 상부 스피커 볼트 체결상태 불량 등 시설 안전 관련 추가 개선사안을 보완하는 데 열흘이면 충분하다고 계산한 셈이다.
그러면서 “국토부가 요구한 정밀안전진단은 시즌 중 병행할 수도 있어 6월 중 착수할 계획이다. 향후 안전을 위해 합동대책반 참여기관 간 시설물 관리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고, 안전 매뉴얼을 제작하고 시민안전자문단을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할 것”이라고 뒤늦게 약속했다.
참고로 홍남표 전시장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이 확정된 상태다. 설상가상 조명래 제2부시장을 비롯해 홍 전시장이 임명한 정무직의 거취를 두고 창원시의회 갈등이 커질대로 커졌다. 창원시설공단이사장마저 공석인 상태여서, 사실상 수장 공백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가 공개한 것처럼 정밀진단을 6월부터 시행하면, 정확히 1년 후 지방자치단체장을 포함한 지방선거가 있다. 사실상 시정이 마비된 창원시의 현실을 고려하면, 창원구장과 NC를 또 한번 정쟁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개선비용 등을 구단에 떠넘길 수도 있다.
창원시는 통합 창원시 출범과 동시에 엄청난 공약(空約)으로 NC를 홀린 뒤 얼굴을 싹 바꾼 전례가 있다. 새 구장 건설비용 부담과 부지 선정을 두고 일방적 통행을 하더니 지방선거 기간이 도래하자 선심쓰듯 새구장 건립에 속도를 냈다. 창원 NC파크 착공 이후에는 약속한 것보다 더 큰 돈을 내놓으라고 겁박하는 등 앞뒤가 다른 행태를 이어왔다. 적어도 창원시에게 NC는 호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로 정립된 인상이다.

NC 구단은 10일 “창원시 발표에 감사드린다”면서도 “구단은 16일부터 울산에서 홈경기를 치른다. 창원시의 정비 일정이 지연되면 더 큰 혼란과 실망을 줄 수 있다. 구장을 내어준 울산시에 대한 도리도 마땅히 다해야 한다”고 거절 의사를 정중하게 표했다. “KBO, 울산시와 협의해 신중하게 향후 계획을 결정할 예정”이라고도 덧붙였다.
굳이 창원을 연고지로 고수할 이유는 없다. 시즌 중 구단을 매각하는 기업도 있고, 연고지를 이전한 사례도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 ‘천만 콘텐츠’가 된 KBO리그 구성원을 호구로 보는 집단에 끌려다니는 건 야구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절이 싫으면, 중은 떠나기 마련이다. zzang@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