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인생’이라 말한 이국종, 한국 의료의 민낯을 드러내다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의 주인공 백강혁의 실제모델인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이 지난 14일 충북 괴산에서 열린 군의관 대상 강연에서 국내 의료계와 군 조직, 의료 체계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조선 반도는 입만 터는 문과 놈들이 해 먹는 나라다. 이게 수천년간 이어진 조선 반도의 DNA고 이건 바뀌지 않는다. 꼬우면 USMLE(미국 의사시험) 미국으로 탈출해라. 조선에는 가망이 없으니 너희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듯 조선을 떠나라.

■한평생을 외상 외과에서 X 빠지게 일했는데 바뀌는 건 하나도 없더라. 내 인생 망했다. 나랑 같이 외상 외과 일하던 윤한덕 교수는 과로로 죽었다. 너희는 저렇게 되지 마라!

이 병원장은 기성 세대 의사와 병원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고 현업 시절 동료들이 외상 외과를 그만둔 사례를 덧붙이며 분노했다. 또한 의정 갈등 관련해 돌직구도 날렸다.

■서울대, 세브(란스 병원) 노의(고령 의사)들과 공무원들에게 평생 괴롭힘당하며 살기 싫으면 바이탈과 하지 마라.

■교수들은 중간 착취자가 맞다. 대학병원이 전공의 짜내서 벽에 통유리 바르고 에스컬레이터 만들면서 돈 달라고 하니까 조선인들이 수가 올리라는 말을 개소리 취급하는 거 아니냐. 움짐, 텐트만 있어도 서울대·세브란스 병원이라고 하면 조선인들은 다 진료받으러 온다.

■훈련소 내부에서 폭동이 일어나서 반 정도는 죽어있을 줄 알았는데 다들 착하다. 감귤(복귀한 의사를 비하하는 말) 정도로 놀리는 거 보니 귀엽다.

이날 이국종 병원장이 ‘내 인생은 망했다’고 선언하며 후배들에게 “바이탈과 하지 마라”, “탈조선해라”고 말한 것은 단순한 푸념이나 개인 감정의 폭발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외면받아온 필수의료 체계의 붕괴를 고발하고,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구조에 대한 냉혹한 인식에서 비롯된 발언으로 보인다.

그의 메시지는 두 방향으로 향한다.

하나는 젊은 의사들을 향한 절박한 충고다. ‘나처럼 살지 마라’는 말은 헌신의 대가가 박탈과 좌절로 끝나는 한국 의료 현실을 상징한다.

다른 하나는 제도를 만든 자들에 대한 고발이다. ‘입만 터는 문과놈들이 해먹는 나라’, ‘중간착취자 교수들’이라는 표현은 의료 체계 위에 군림하며 변화는 외면한 권력자들을 정조준한다.

◇ 이국종이 드러낸 한국 의료의 핵심 문제들

필수의료 기피와 수가 체계 문제다. 외상외과·소아과·흉부외과 같은 바이탈과는 업무 강도에 비해 수가가 턱없이 낮다. 그 연장선에서 젊은 의사들이 해당 과를 기피하는 구조는 개선 없이 방치되고 있다.

대형병원의 ‘상품화된’ 의료 환경도 뼈아프다. 통유리, 에스컬레이터, 고급 인테리어로 포장된 병원이 전공의의 노동으로 유지된다고 지적하며 이국종은 이를 ‘전공의 쥐어짜기’로 규정한다.

의료 인력의 비효율적 운용도 문제다. 현장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정부와 병원은 인프라만 확장하고 있다. 특히 의사 수 늘리기(정원 확대)만이 해법인 것처럼 몰고 가는 구조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또한 이국종 병원장의 “입만 터는 문과놈들”이라는 발언은 과격하지만, 의료 정책 결정에 실질적 현장 경험이 없는 관료·정치권의 지배가 심각하다는 절규다.

그리고 ‘탈조선’이라는 표현의 저의는 단순히 국외 이탈 권유가 아니다. 이 병원장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이 시스템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변화하지 않는다’는 극단적 무력감의 표현이며, 동시에 현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의료인들이 하나 둘 떠나게 될 것이라는 예고된 붕괴 시나리오를 의미한다.

이국종 병원장은 개인적으로 ‘망한 인생’이라며 퇴장을 암시했지만, 그 발언은 후배 의사들에게는 구조적 개혁을 위한 신호탄이 되어야 한다는 하소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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