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tvN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이하 ‘언슬전’)에서 오이영(고윤정 분)과 구도원(정준원 분)의 로맨스는 시작부터 낯설었다.
병원이라는 공간 안에서의 관계, 그것도 1년 차와 4년 차라는 위계적 위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돈 총각’이라는 설정이다. 연애로 나아가기엔 장벽이 높다. 넘어선 안 되는 선이 그어진 조합이었다.
그래서 이영의 감정은 조용하게 시작됐다. 아침 식사를 다정하게 챙겨주고 당직 후 같은 공간에서의 공기는 향긋했고, 사소한 말투 하나까지 존중이 담긴 도원을 은은히 지켜봤다. 일관되게 따뜻하고 순수한 도원에게 마음을 열었다.
기존의 병원 로맨스들이 흔히 긴박한 수술 장면이나 위기 속 몰입으로 감정을 증폭시켰다면 ‘오구 커플’의 관계는 아주 일상적인 틈새에서 자랐다. 회의 끝난 복도, 야식 배달을 같이 기다리는 당직실, 혹은 엘리베이터 앞에서의 짧은 침묵. 드라마는 그런 장면들 속에서 서사 없이도 ‘감정의 기류’를 설계해나갔다.

그 전환점이 된 장면은 놀이터였다. 벤치에 나란히 앉아 맥주를 마시던 밤, 이영은 망설임 끝에 도원에게 고백한다. “좋아해도 돼요?” 당황한 도원은 즉답을 피했지만, 그날 이후 두 사람의 거리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이영은 감정을 거두지 않았고, 도원은 더는 그 마음을 외면하지 않았다.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난 고윤정은 오구 커플의 시작을 회상했다.
“3회에서 손을 잡아요. ‘벌써 손잡아?’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1년 차는 힘들고 불안정한 시기잖아요. 누군가 지켜주는 순간, 쉽게 마음이 열릴 수 있다고 느꼈어요. 반응이 뜨거울지 몰랐어요. 연기를 하다보니 저도 몰입했어요. 1년 만에 방송을 보니까 진짜 시청자 입장이 되더라고요. 댓글에서 ‘설렌다’ ‘잘 됐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보이면, 그제야 우리가 해낸 멜로가 시청자에게 닿았구나 싶었어요.”
이 커플이 시청자들에게 유독 큰 인기를 끈 이유는 둘 중 누구도 상대의 마음을 먼저 끌어당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 대신 시선으로, 제스처 대신 공기로 이어진 멜로는 요란하지 않아 더 깊었다.
“오이영은 어떤 것에 진심을 쏟기까지 계기와 동기가 필요해요. 그건 실제 저와도 비슷한 부분이에요. 저도 한번 꽂히면 몰두하고, 또 정이 많아요. 작가님도 배우들의 실제 성격을 참고해서 각본을 쓰셨다고 하더라고요.”

고윤정이 열연을 펼친 ‘언슬전’은 2020~2021년 방송된 인기 시리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스핀오프 드라마다. 기존 작품이 병원 내 인간적인 관계와 노련한 의료진들의 연대를 조명했다면, ‘언슬전’은 이제 막 의사로 첫발을 내딛는 1년차 레지던트들의 불안한 성장기를 그린다.
산부인과라는 민감하고 진입장벽 높은 공간을 배경으로, 이들의 서툰 일상과 흔들리는 감정을 조용히 비춘다. 아직 실수가 많고 인격적으로 완성이 덜된 전공의들의 얼굴은 묘하게 더 애틋하고 현실적이다.
‘언슬전’은 고윤정에게 첫 주연작이었다. 그것도 분량이 많고 중심을 이끄는 역할이다. 그는 이번 경험을 “배우로서 가장 많은 걸 배운 시간”이라고 정리했다.
“감기에 자주 걸려서 후시녹음을 많이 했어요. 제 컨디션이 현장 전체에 영향을 주더라고요. 그걸 체감하면서 ‘이제는 나 하나가 아니구나’ 싶었어요. 주연이란 건, 책임감부터 달라야 하는 거구나 깨달았죠.”
고윤정은 차기작 ‘이 사랑 통역 되나요?’를 통해 다시 한 번 로맨스 장르에 도전한다. “‘오이영-구도원’이 사랑을 많이 받아서, 오히려 부담이 되기도 해요. 그런데 그만큼 자신감도 얻었어요. 이영이는 현실적인 인물이었고, 이번엔 조금 더 화려하고 판타지적인 사랑을 그릴 예정이에요.”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