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용일 기자] 상대 퇴장 변수와 더불어 용병술의 승리다. 축구대표팀 홍명보호가 무더위와 불안정한 정세, 6만5000여 상대 팬이 몰려든 이라크 바스라 땅에서 한국 축구의 월드컵 11회 연속 본선 진출을 일궈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6일 새벽(한국시간) 이라크 바스라에 있는 바스라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라크와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B조 9차전 원정 경기에서 후반 터진 ‘교체 카드’ 김진규, 오현규의 연속포로 2-0 완승했다.

5승4무(승점 19)를 기록한 한국은 이날 오만을 3-0으로 꺾은 2위 요르단(승점 16)과 승점 차를 3으로 벌리며 1위를 지켰다. 또 승점 추가에 실패한 3위 이라크(승점 12)와 격차를 7로 벌리면서 오는 10일 3차 예선 마지막 경기인 쿠웨이트전(서울) 결과와 관계 없이 조 2위까지 주어지는 본선행 티켓을 조기에 품었다.

한국은 1986년 대회 이후 11회 연속 월드컵 무대를 밟는다. 아시아에서 ‘어나 더 레벨’이다. 이미 지난 10회 연속 본선 출전도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스페인에 이어 한국이 전 세계에서 6번째였을 정도로 대기록이었다.

홍명보호는 지난해 여름 출범 이후 대한축구협회의 각종 행정 논란 속 불안정하게 출발했으나 크게 흔들림 없이 중동 5개국과 경쟁에서 우위를 보이면서 내년 북중미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됐다.

홍 감독은 소속팀 토트넘에서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대표팀에 합류한 ‘캡틴’ 손흥민을 명단에서 제외했다. 최근 발 부상에서 온전하지 않은 만큼 계획대로 무리하게 기용하지 않았다.

그는 선발진에 오세훈을 원톱에 두고 황희찬, 이재성, 이강인을 2선에 뒀다. 중원은 황인범과 박용우가 호흡을 맞추게 했다. 포백은 이태석, 조유민, 권경원, 설영우다. 골문은 조현우가 지켰다. 주장 완장은 이재성이 달았다. 손흥민의 등번호 7은 벤치에서 대기한 문선민이 품었다.

한국전을 앞두고 헤수스 카사스(스페인) 감독을 경질, 그레이엄 아널드(호주)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이라크는 월드컵 본선행을 위해서는 승리 외엔 의미가 없었다. 예상대로 초반부터 강한 전방 압박을 바탕으로 공격에 힘을 줬다.

그러나 의욕이 과했는지 킥오프 2분 만에 유세프 알 아민이 황희찬의 발목을 겨냥한 태클로 경고를 받았다. 전반 20분에도 이브라힘 바예시가 박용우와 공중볼 경합 과정에서 거친 반칙으로 옐로카드를 안았다.

결국 한국엔 호재, 이라크엔 악재가 따랐다. 전반 25분 이라크 최전선에서 압박하며 득점 기회를 노린 핵심 공격수 알리 알 하마디가 레드카드를 받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앞서 센터백 조유민이 공중볼을 머리로 걷어내는 과정에서 알 하마디가 발을 높게 들었다. 이때 축구화 스터드가 조유민의 얼굴을 가격했다. 조유민의 이마와 코에 스터드 자국이 선명했다. 애초 일본인 주심인 아라키 유스케 심판은 옐로카드를 꺼냈다. 그러나 비디오판독(VAR)을 거쳐 레드카드로 바꿔 들었다.

경기 분위기는 급격히 바뀌었다. 한국이 볼 점유율을 높이며 이라크를 압박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골 운이 따르지 않았다. 전반 30분 황인범의 크로스 때 황희찬이 골문 오른쪽에서 논스톱 기회를 잡았으나 왼발 슛이 빗나갔다. 5분 뒤엔 이강인의 절묘한 왼발 프리킥을 이재성이 헤더 슛으로 연결했는데 골대를 때렸다.

이라크는 포백을 기반으로 높은 위치에서 한국을 압박했다. 하지만 한국은 측면을 지속해서 두드리며 선제골 기회를 엿봤다. 전반 추가 시간 이강인이 다시 기회를 잡았다. 페널티박스 오른쪽에서 장기인 왼발 감아 차기 슛을 시도했다. 공은 위협적인 궤적을 그리며 이라크 골문 왼쪽을 향했는데 다시 골대 맞고 물러났다.

한국은 수적 우위 속 전반에 6개의 슛을 시도했으나 두 번이나 골대를 때리는 불운 속에 득점 없이 마쳐야 했다.

후반 들어 한국은 중원에 변화를 줬다. 박용우를 빼고 김진규를 투입했다. 전반보다 더욱더 공격 속도를 늘렸다.

그러나 좀처럼 0의 균형을 깨지 못했다. 그러다가 후반 15분 승부를 걸었다. 홍 감독은 오세훈과 황희찬을 빼고 오현규, 문선민을 각각 교체 투입했다.

2분 뒤 한국은 황인범이 오른발 중거리 슛을 때렸는데 골키퍼가 몸을 던져 쳐냈다. 이어진 오현규의 슛도 잡아냈다.

하지만 기어코 한국은 후반 18분 고대하던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홍 감독의 용병술이 들어맞았다. 문선민이 왼쪽 측면에서 크로스한 공을 오른쪽에서 설영우가 제어한 뒤 뒤따르던 이강인에게 내줬다. 그가 욕심내지 않고 다시 중앙의 김진규에게 연결했다. 김진규가 침착하게 이라크 골문 오른쪽 구석을 가르는 슛으로 득점했다.

한국은 이후 이라크에 한 차례 위협적인 슛을 허용했지만 실점 없이 위기를 넘겼다. 다시 그라운드를 지배하며 이라크를 몰아세웠다.

홍 감독은 후반 29분 이재성을 불러들이고 K리그1 득점 선두(11골)를 달리는 전진우를 투입했다. 그의 A매치 데뷔전. 이라크도 오사마 라시드, 사자드 자심을 나란히 교체로 집어넣으며 공격적으로 맞섰다.

전진우는 투입되자마자 자신 있는 드리블과 더불어 오른발 슛으로 기세를 올렸다.

기어코 후반 36분 교체 자원을 통해 추가 득점에 성공했다. 중원에서 공을 잡은 황인범이 오른쪽 측면을 파고든 전진우에게 전진 패스했다. 전진우가 재차 가운데로 낮게 깔아 찼고, 오현규가 마무리했다. 과거 수원 삼성 유스팀에서 한솥밥을 먹은 두 선수가 합작품을 만들어냈다.

사실상 KO펀치다. 한국은 후반 42분 설영우 대신 최준까지 들어와 힘을 불어넣었다. 결국 상대에 큰 위기를 내주지 않으면서 두 골 차 간격을 지켜냈다. 6만5000여 이라크 팬의 일방적인 함성에도 무실점 승리를 차지하며 본선행을 확정했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