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여성들의 연대가 시대와 권력에 제대로 한 방 먹였다. 2025년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마’는 1980년대 ‘애마부인’을 제대로 비틀었다.
배우 이하늬, 방효린이 호흡을 맞춘 ‘애마’는 1980년대 국내 최대 에로영화 프랜차이즈의 탄생 과정에 가려진 어두운 현실에 용감하게 맞서는 톱스타 희란(이하늬 분)과 신인 배우 주애(방효린 분)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22일 6부 전 회차 공개됐다.

작품은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고 돌아오는 정희란의 시선에서 시작됐다. 당대 최고의 톱스타였던 정희란에게 들어온 대본은 ‘젖가슴’으로 도배된 에로영화 ‘애마부인’이었다. 분노한 정희란은 자신을 ‘벗는’ 여배우로 취급하는 소속된 영화사 대표 구중호(진선규 분)에게 반항하기 시작했다.
구중호는 그런 정희란을 비웃으며 그를 주연에서 조연으로 끌어내렸다. 새로운 ‘애마부인’으로 발탁된 건 밤무대 탭댄서로 활동하던 신주애였다.
그러나 야만의 시대였다. 여배우는 벗는 것이 당연했고, 성(性) 상납도 암암리에 자행되던 시기였다. 정희란은 신주애가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길 바랐다. 마침내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충무로 영화판을 넘어 대한민국과 맞짱을 선언했다.

국내 영화계에서 ‘애마부인’은 시즌13까지 제작된 대형 프랜차이즈다. 여성의 욕망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만 동시에 여배우를 만인의 욕정 대상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땐 여배우를 벗기는 게 당연하던 시기였다. ‘애마’는 그런 ‘애마부인’을 바라보던 시각을 2025년 현대에 이르러 재해석했다. 벗어야 몫을 다하는 여성 캐릭터의 뒤에 있던 여배우, 그리고 사람 그 자체에 집중했다.
이 모든 건 정희란을 통해 그려진다. 정희란은 해외유수영화제를 휩쓸고 다니던 글로벌 톱스타지만 여전히 대중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은 ‘노출’이다. ‘정희란’이라는 배우가 가진 가치보단 ‘얼마나 벗는가’가 중점이다. 이는 신예 신주애에게 대물림된다.
당시 충무로를 둘러싼 욕망과 시대의 권력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카르텔은 희란과 주애를 ‘인간’이 아닌 욕망의 대상으로 취급했다. 작품 속 고위 권력층과의 접대 장면이 그 증거다.

정희란은 신주애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본다. 그리고 그 굴레를 끊기 위해 시대의 민낯을 폭로한다. 또 다른 정희란을 만들지 않고, 신주애가 신주애로 살 수 있도록.
그렇게 손을 잡은 두 여성이 만든 결말은 아쉽게도 극적이지 않다. 여전히 신주애에겐 에로영화 대본이 들어온다. 그런데도 이를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부조리한 권력과 당당히 맞짱 뜬 이들이 보여준 여성 연대의 메시지 때문이다. 그때의 여성들에게 전하는 위로이자 지금의 여성들에게 건네는 용기다.

이 모든 중심엔 이하늬가 있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라는 설정답게 비주얼부터 화려한 이하늬는 정희란 그 자체다. 그가 보여주는 ‘깡’과 우아함 모두 이하늬를 본떠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예 방효린 역시 이에 못지않은 존재감을 보여준다. 첫 등장인 탭댄스 신과 캐릭터가 가진 곧은 신념이 당돌하고 매력적이다.
진선규가 연기하는 구중호는 비호감이다. 그의 출중한 연기력이 구중호를 한층 역겹게 만든다. 조현철은 초짜 감독이지만 작품을 사랑하는 곽인우 감독의 어리숙한 매력을 잘 표현했다. ‘폭싹 속았수다’ 관식이로 큰 사랑을 받은 박해준은 전작의 이미지를 완전히 지운 진상 캐릭터를 완벽히 구현했다.
‘애마’는 1980년대 시대상뿐만 아니라 그 시절 복고풍 미장센을 톡톡히 살려 보는 재미까지 더했다. 눈이 즐겁고, 마음을 울리는 작품이라 더할 나위없다. sjay0928@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