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바닷속 보물을 차지하려는 ‘촌뜨기들’의 탐욕과 욕망을 그린 드라마 ‘파인: 촌뜨기들’(이하 ‘파인’)은 이미 독특한 설정과 묵직한 메시지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작품 속에서 가장 큰 반향을 불러온 건 의외로 배우 임수정이었다. 데뷔 20여 년 만에 본격적으로 악역에 도전한 그는 돈에 대한 집착으로 번들거리는 눈빛과 요란한 화려함을 두른 채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었다.
한때 ‘미안하다, 사랑한다’ 속 청순한 은채의 이미지로 대표되던 배우가 이렇게 독하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난 임수정은 “이번 작품은 제가 오래 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악역이라 더 의미가 컸다”고 말했다.
임수정이 연기한 양정숙은 70년대 흑백산업의 안주인으로, 기회만 있으면 거칠게 움켜쥐려는 본능적 욕망의 인물이다. 임수정은 단순히 악독한 여성상이 아니라, 남자들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는 언변과 전략적 카리스마를 덧입혔다.
“처음에는 감독님이 ‘눈이 너무 착하다’라고 하셨어요. 정숙의 언변과 카리스마, 그리고 희동을 향한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내려고 노력했죠. 양정숙은 얼핏 보면 어리숙한 면도 있지만, 동시에 서늘함도 있는 인물이에요.”

흥미로운 건, 이번 도전이 오래 전부터 품어온 갈망의 결실이라는 점이다. 임수정은 20대, 30대 때도 늘 악역을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이번 작품에 분량이 많지는 않아서 한 장면, 한 장면이 소중했어요. 몇 장면 안에 모든 걸 쏟아 연기해야 했죠. 악역을 하면서 배운 게 많아요. 다음에는 그런 연민조차 들지 않는 악역을 해보고 싶어요.“
임수정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면, 한 작품마다 이전 이미지를 지워내고 새로운 얼굴을 제시해온 궤적이 뚜렷하다.
청순한 은채(‘미안하다 사랑한다’), 화끈한 정인(‘내 아내의 모든 것’), 섬세한 모성의 얼굴(‘당신의 부탁’), 개성 넘치는 70년대 배우(‘거미집’)까지, 늘 변화를 추구해왔다. 이번 ‘파인’에서의 악역 변신 역시 같은 궤도의 연장선이자 스스로를 확장하는 한 걸음이었다.
여전히 연기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망이 묻어 있었다. 이제 시청자들은 더 이상 ‘청순 아이콘’에 머물지 않는 배우 임수정의 다음 얼굴을 기다리게 된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는 배우로서 늘 숙제라고 생각해요. 배우로서는 이런 걸 한 번씩 깨나가야 하고 새로운 얼굴을 보여줘야겠다는 나름의 도전장을 내민 거죠. 그래도 저의 도전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시고 바라봐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커요. 임수정이 이제는 더 확장된 역할을 기대해도 되겠다는 걸 보여주시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이 가장 기쁜거 같아요. 앞으로 더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khd9987@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