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 글로벌 인기 여전
음식·문화·관광 등 종합선물세트 역할
넷플릭스 재팬 WBC 중계로 영역확장
본사 시리즈 총괄은 한국계 인사 승진

[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놀라움의 연속이다. 공개된지 70일이 훌쩍 넘었지만, 열기는 그대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얘기다.
케데헌은 그야말로 K-콘텐츠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넷플릭스가 공개한 오리지널 영화 중 가장 많은 시청 횟수를 기록했고, OST 타이틀곡 ‘골든’은 빌보드 싱글차트 1위와 영국 오피셜 차트 1위를 찍었다.

골든뿐만 아니라 유어 아이돌과 소다팝 등 OST 수록곡 도 빌보드 차트 싱글 톱10에서 경쟁 중이다. 1990년대 머라이어 캐리와 보이스투맨 등이 빌보드 차트를 장기집권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할만큼 인기다.
케데헌 인기를 등에 업고 ‘K-푸드’와 ‘한국관광’도 인기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헌트릭스가 먹은 라면(농심)’은 사전 예약판매만으로 초동 물량이 동났고, 김밥과 스낵류도 없어서 못 파는 경지에 올랐다.

알려졌다시피 국립중앙박물관은 케데헌 속 정령 중 하나인 더피(호랑이, 엄밀히 말하면 해태) 덕분에 역대 최다 관람객 신기록을 매일 경신 중이다. 북촌과 남산타워, 낙산공원 등 영화속 배경은 이른바 ‘성지’로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을 끈다.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한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우습게 들리지 않는다. K-컬쳐를 동경하거나 흥미롭게 바라보던 외국자본이 교포들과 손잡고 ‘가장 한국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낸 게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이른바 ‘내부자’가 아니었으므로 영화 한 편에 모든 빛나는 요소를 종합선물세트처럼 담을 수 있지 않았을까.

글로벌 OTT 부동의 1위 기업인 넷플릭스를 통해 거둔 성공이어서, 케데헌의 글로벌 흥행은 어떤 형태로든 세계 콘텐츠 시장에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디즈니플러스가 공개해 반향을 일으킨 쇼군과는 그 영향력과 파급력, 문화적 침투력 등 결이 크게 달라서다.
추측의 영역이지만, 눈길을 끌만 한 움직임은 있다. ‘로컬 서비스’에 국한하지만, 넷플릭스 재팬은 내년 3월 개막하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내 뉴미디어 중계권을 취득했다.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WWE)나 미국프로풋볼(NFL)의 크리스마스 중계 이벤트 등 엔터테인먼트 성향이 강한 스포츠 중계를 시도한적은 있지만, 본격적인 스포츠, 그것도 국제대회를 중계하는 건 꽤 이례적이다.

야구는 일본이 가장 내세울 수 있는 콘텐츠다. 오타니 쇼헤이(LA다저스)로 대표되는 ‘일본프로야구 출신 빅리거’들이 일장기 아래 뭉쳐 우승에 도전하는 건 침체한 일본 경제를 위해서도 필요한 콘텐츠로 보인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중계권을 확보하면, 2·3차 콘텐츠를 생성할 수도 있다. K-컬쳐처럼 문화적 다양성이 결여된 일본의 특성을 고려하면, 적어도 일본 내에서는 야구, 그것도 오타니 등 슈퍼스타들이 출전하는 국제대회는 투자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어떤 콘텐츠를 내놓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성공하면 OTT 기업들의 스포츠 중계시장 진출이 활성화할 수도 있다.

또 한가지 변화는 넷플릭스 미국 본사의 시리즈 파트장에 지니 호위(Jinny Howe)라는 한국계 인사가 선임된 점이다. 케데헌과 오징어 게임 등 ‘지극히 한국적인 것’으로 큰 성공을 거둔 넷플릭스가 영상 콘텐츠의 문화적 다양성을 가속할 것으로 기대할 만한 조치다.
물론 넷플릭스 관계자는 “넷플릭스 임원 중에 한국계가 많을뿐더러 본사에서 한 해에 제작하는 콘텐츠만 수백 편이다. 문화적 다양성에 기인한 작품을 제작하는 빈도가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많을 수밖에 없어서 한국계가 시리즈 파트장이 됐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더라도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제작한 콘텐츠는 어떤 형태로든 더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국산 글로벌 OTT’ 출범을 둘러싸고 정부와 기업들이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1등 기업과 격차만 계속 벌어지고 있다. K-컬처의 영속성은 ‘산업’보다 ‘콘텐츠’가 먼저여야 하는 이유다. zzang@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