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뜨거운 여름, 부산의 거리는 바다의 내음과 사람들의 활기로 물든다. 매년 이 시기가 되면 파도 소리를 압도하는 또 다른 울림이 도시를 채우기도 한다. 바로 웃음소리다.

13년의 역사를 이어온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은 이제 단순한 행사를 넘어, 부산의 여름을 대표하는 하나의 문화적 풍경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처음부터 이 무대를 일궈온 코미디언 김대희가 있다.

김대희는 제13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이사라는 직함으로 올해도 관객을 맞았다. 그는 늘 그렇듯 자신을 낮추는 농담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 너머에는 긴 세월을 함께한 사람만이 가진 묵직한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부산에서 스포츠서울과 만난 김대희는 “10회가 넘어가면서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이사라는 직책이 창피할 정도로 조직위원회와 집행부가 완벽하게 일을 해내고 있다. 하는 일이 거의 없어서 이러다 짤리는 것 아닌가 싶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행사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을 묻자 그는 주저 없이 ‘블루카펫’을 꼽았다. 초창기, 영화배우들의 레드카펫을 보며 ‘개그맨들도 무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작은 발상은 이제 페스티벌의 꽃이 되었다.

“김준호랑 1회를 기획할 때도 그랬어요. 영화배우들은 레드카펫에 멋있게 서는데, 우리 개그맨들은 무대가 없었죠. ‘우리도 멋있게 턱시도 입고 걸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그게 지금은 ‘부코페’의 꽃이 됐죠. 그래서 늘 가장 기대돼요.”

무더위와 싸우며 열정을 다했던 초창기의 기억은 지금도 그의 머릿속에 선명하다. 그는 올해 가장 큰 변화로 공연 환경을 꼽았다. 웃음을 주는 일은 결국 관객과 함께 호흡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전엔 영화의 전당 야외에서 했는데 너무 더웠어요. 블루카펫 밟고 앉으면 다 젖을 정도였죠. 관객도 개그가 웃겨야 웃는데, 더위에 지쳐 웃지를 못했어요. 사실 진작 실내로 옮겼어야 했죠. 올해부터는 시원한 실내에서 공연을 즐기실 수 있게 됐어요.”

그렇다면 무대 밖 김대희는 요즘 무엇에 가장 집중하고 있을까. 그는 주저 없이 채널S ‘독박투어’와 tvN STORY ‘내 새끼의 연애’, 그리고 유튜버 ‘꼰대희’의 매니저 역할을 언급했다.

“요즘은 ‘독박투어’에 집중하고 있어요. 또 8부작이지만 ‘내 새끼의 연애’라는 프로그램도 하고 있죠. 무엇보다 꼰대희 형님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어요. 사실은 제가 매니저처럼 형님 스케줄을 챙기는데, 가끔은 형님이 제 일정을 봐주기도 해요.”

김대희의 웃음 철학은 단순하지만 흔들림이 없다. 데뷔 초부터 그는 화려하게 치고 빠지는 방식이 아니라, 오래 버티며 살아남는 길을 선택했다.

“데뷔 초에는 그냥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빵 치고 사라지느니 오래 살아남는 게 낫다고 봤죠. 결국 강한 자가 아니라 버티는 자가 살아남는 거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제 한마디에 사람들이 웃는 걸 보고 행복을 느꼈어요. 그게 제 피 같아요.”

그 철학은 무대 밖 삶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20년 차 남편, 세 딸의 아버지로서 그는 가정의 화목이 곧 일의 원동력이라 믿었다.

“가정이 화목해야 밖에서 일이 잘돼요. 와이프랑 티격태격하면 하루 종일 일이 안 잡히죠. 아직도 애인 같은 남편이 되고 싶어요. 딸 셋인데 친구 같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해요. 아이들이 지금도 집에 들어오면 손을 내밀면 안기고 포옹해요. 고등학생, 중학생이 돼도 여전히 그렇죠. 아내랑 자주 스킨십하는 걸 보면서 딸들도 다정한 남자를 만나야겠다고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 같아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특별하다고 회자되는 무대 중 하나는 김준호와 김지민의 결혼식이었다. 김대희는 ‘꼰대희’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라며 말을 이어갔다. ‘꼰대희’는 돌아가신 김지민의 아버지를 대신해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해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았다.

“‘꼰대희’ 삼촌이 그러더라고요. 책임감이 컸대요. 최대한 근엄하게 하려 했다고. 장난은 전혀 안 치고, 아버지 자리를 대신한다는 게 무겁게 다가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또 준호가 지민이를 만나면서 사람이 됐다고도 했죠. 예전엔 인간의 탈을 쓴 동물 같았는데, 이제는 인간이 됐다면서요.”

앞으로의 도전을 묻자 그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보다 지금 무대를 단단히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코미디 무대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부코페는 더없이 소중한 ‘마지막 소통 창구’였다.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보다는 지금 무대를 견고히 다지는 게 더 중요해요. 대한민국에서 코미디 소통 창구가 부코페밖에 없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언제 이렇게 코미디 무대가 사라졌을까 싶고, 고맙지만 안타깝죠.”

마지막으로 그는 관객에게 진심 어린 인사를 남겼다. “힘든 발걸음을 해주셔서 감사해요. 공연 보시면서 마음껏 웃고, 행복하게 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내년에도 꼭 찾아와 주시길 바라요.”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