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촬영까진 불과 10일 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들어가게 된 작품이다. 경험이 많은 배우도, 연륜이 깊을 나이도 아니다. 기대보다는 우려가 클 수밖에 없었다. tvN ‘폭군의 셰프’에 캐스팅된 이채민을 향한 보편적인 시선이 그랬다.
역할은 이헌이다. 가상 인물이지만, 연산군을 모티브했다. 폭군이다. 목숨을 앗아가는 걸 오락처럼 즐기는 인물이다. 살기가 엿보여야 했다. 불과 열흘 사이 이채민은 찢어진 눈을 만들었다. 딱 봐도 두려움이 생기는 날카로운 인상이다.
tvN ‘일타스캔들’이나 넷플릭스 ‘하이라키’에선 볼 수 없던 이미지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연지영 역의 윤아가 든든히 버팀목이 된 것도, ‘사극 장인’ 장태유 PD의 노련한 디렉션이 뒷받침 된 것도 있겠지만, 이채민의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도 놀랍다.

어린 나이에 정치적인 이유로 어머니를 잃은 결핍이 가득한 인물이다. 분노가 가득한 동시에 나약한 인간의 외로움이 묻어 있다. 죽일듯 덤비다가도 언뜻 공허함도 내비친다. 비장함을 쫙 뺀 사극이라 이헌의 서사를 대략적으로 암시하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연산군의 전사를 적절히 표현한다.
‘폭군의 셰프’는 코미디다. 톤이 상당히 밝다. 연지영은 말끝에 ‘요’자를 붙인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와 같은 일반적인 사극 대사와 현대적인 요소가 마구 버무려진 작품이다. 덕분에 톤 자체가 독특하다.
그 사이에서 이헌도 가벼움과 무거움을 오고 간다. 특히 음식을 먹을 땐 확 풀어진다. 이헌이 연지영의 고급 음식을 음미하는 표정엔 다양한 감정이 녹아있다. 적절히 절제된 밝은 표정으로 장르적 맛을 살리면서도, 폭군으로서의 무게감은 놓지 않았다.
우려가 컸던 ‘폭군의 셰프’ 제작발표회에선 모두가 이채민의 연기를 호평했다. 장 PD는 “100% 만족했다”고 했고, 임윤아는 “집중력이 좋았다”고 칭찬했다. 서이숙은 “대단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어려울 수밖에 없던 미션임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 순발력 있게 훌륭한 캐릭터를 만든 것에 대한 선배들의 찬사였다.

얼마나 집요했던 걸까. 겨우 열흘 안에 작품에 완전히 녹아든 얼굴을 만들었다. 연기적으로 흠이 없다. 오래 준비했어도 어려울 수 있는 캐릭터를 빠르게 일궈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글로벌로 뻗어나가고 있는 K-콘텐츠, 또 하나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했다. intellybeast@spo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