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1인극 도전…‘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질문
진실 증명 못 하는 현실과 맞서 싸우는 피해 변호사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공연예술가 이자람이 2년 만에 배우로 돌아왔다. 그동안 명창답게 판소리 공연을 펼쳤다. 그 사이 정반대 장르인 록(Rock)까지 영역을 넓혀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그의 연기를 기다렸던 팬들 앞에 오랜만에 선 그가 선택한 작품은 연극 ‘프리마 파시’. 사회적 문제에 정면 대결하는 1인극이다. 나 홀로 120분을 끌어가는 1인극을 생애 처음 도전한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이자람은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나 연극 ‘프리마 파시’에 참여한 이유와 무대 위 흐름을 소개했다. 그는 “어렵고 힘든 작품이기에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라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프리마 파시’는 호주 인권변호사 출신 극작가 수지 밀러가 직접 경험한 법의 한계와 모순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여성 변호사의 모노드라마로,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가혹한 입증 책임과 법 제도의 한계를 치밀하게 그래내며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와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파격적인 스토리로 충격을 안긴 작품이다.

지난 5월 ‘프리마 파시’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그는 이미 작품의 깊이를 알고 있었다. 먼 나라 공연이라고 생각했던 작품이 한국에 상륙한다는 소식에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길 수 없어, 바로 합류했다.
그는 “NT라이브(National Theatre Live, 전 세계 라이브 중계)를 통해 조니 코머의 공연을 접했다”고 전했다. 조니 코머는 해당 작품으로 2022년 웨스트엔드와 이듬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 제76회 토니어워즈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다.
이어 “가볍게 공연한다는 생각은 없다. 훌륭한 공연이라고 생각했다. 대본의 심오함을 씹어먹고 관통해가는 과정에서 엄청난 공연이라고 느꼈다”며 “무대에 서기 전 되뇌는 것이 있다. 암흑 속에서 걸어 나가기 전 ‘테사’를 10번 넘게 말하고 들어간다. 수지 밀러의 말을 모아, 관객들에게 전달하러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시지 전달에 있어 욕망도 내포돼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수지 밀러의 대본을 빌려 ‘테사’의 ‘입장’을 알리는 것이다. 이자람은 “수지 밀러가 곱씹으면서 만든 말을 내 몸을 통해 캐릭터가 내뱉는 것이다. 최대한 몸에 찌꺼기 없도록 하는 게 가장 힘들다. 하지만 잘 통과해서 나아가도록 잡생각과 자의식을 없애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무대 위에서 ‘테사’이자 그의 대변인으로 등장하는 이자람은 “관객들도 무거운 이야기인 걸 알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도 안다. 난 그 상황들을 편안하게 말들과 가까워지는 속도를 당기려고 한다”고 전했다.

사실 공연 연습 과장에서 성폭력 사건이 벌어지는 7장부터 전진하지 못했다. 그는 “신유청 연출님께 못하겠다, 하기 싫다며 울며 버텼다. 사건으로 들어가는 782일이 무서웠던 것 같다. 열흘 정도 못 들어가고 헤매다가, 온몸으로 부딪히며 텍스트를 연구·발달하는 (김)신록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다”라며 힘들었던 시간을 회상했다.
이를 위해 처음 마주하는 300여 명의 관객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성급하게 서두르지 않는다. 그는 “처음 봤는데 악수하고 손잡고 밥 먹으러 가자고 하면 배우와 관객 모두 감정이 흔들릴 것”이라며 “관객을 만나자마자 그 이상의 큰 사건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딘가로 뻗치려는 영향을 무대에서 알게 됐다”고 했다.

진실엔 관심 없이 죄를 덮기 위한 이들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바라는 게 아니라는 걸 9회 공연을 마치면서 깨달았다. 재판에서 패배하는 순간, 이자람은 다시 일어나는 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관객에서 “우리 괜찮죠?”라며 서로를 위로하며 다음을 위한 약속을 한다.
‘달걀로 바위 치기’지만, 그 한 알이 되겠다는 이자람이다. 그는 “(달걀이) 모이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남긴다. 결국 이겨내는 마지막 순간만을 위해 120분을 달려간다”라며 “승리하지 못했지만,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상황을 어깨로 밀면서 일어나는 느낌이다. 언젠간 결과가 바뀔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애드리브 없이, 오로지 대본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프리마 파시’는 오는 11월2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블랙에서 공연된다. gio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