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나이나 경력에 비해 변성현 감독이 겪은 풍파는 유례없이 심했다. 각종 논란부터 시작해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을 둘러싼 정치적 해석 논란까지, 변 감독의 작품 외적인 삶은 늘 잡음과 부딪혔다. 이 혹독한 역사는 신작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의 핵심 주제인 ‘진실과 거짓’ 그리고 권력을 쥔 자들의 ‘책임’에 대한 고뇌를 심화시킨 동력이 된 듯하다.
‘굿뉴스’에선 1970년에 발생한 ‘요도호 납치 사건’을 끌고 왔다. 사건 자체만 실화고 그 사이 벌어진 모든 과정은 허구로 꾸민 블랙코미디다. 한 장면 안에 담을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꾹꾹 눌러 담아 빠르게 컷을 붙이는 장기로, 시대를 막론하고 유효한 화두들을 가득 쏟아냈다.

영화는 입만 살고 능력은 없는 고위 관료의 무책임을 조롱하고, 가짜 뉴스가 어떻게 쉽게 만들어지고 확산하는지 날카롭게 짚어냈다. 가장 강력하게 빛나는 메시지는 바로 ‘책임’이다. 민주주의의 모순, 공산주의의 궤변, 자본주의의 환멸까지 일갈하지만, 이 모든 복잡한 사상과 체제 아래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는가’라는 실무자의 떳떳함이다.
그간 감독에게 쏟아졌던 시련과 고뇌는 인간 군상에 대한 깊은 이해로 진화했다. 선과 악을 넘어 합리화와 같은 미세한 인간의 영역을 포착해 작품에 담아냈다. 특히 엘리트 관제사 서고명(홍경 분)을 통해 강조하는 올바른 책임을 다한 ‘무보수의 떳떳함’이야말로, 권력의 탐욕이 지배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에게 가장 절실하게 찾아야 할 진정한 가치라고 제시한다.

방식은 매우 실험적이다. 영화 ‘빅쇼트’ 등에서 활용한 ‘제4의 벽 깨기’ 방식의 연출로 관객을 끌어당겼다. 명언을 하나 던지고 카메라를 보며 “이제 알아듣겠냐?”는 듯 지속해 설명하면서 관객의 이해를 도왔다. 그 사이 벌어진 수많은 사건과 대화, 인물의 성격 등 방대한 설명을 초월적인 존재 아무개(설경구 분)를 통해 강하게 압축시켰다. 덕분에 영화의 흐름은 점점 빨라지는 이득을 얻으면서도 재미는 배가했다.
진실과 거짓을 다루는 센스도 넘친다.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라는 트루먼 셰이디의 명언을 루즈벨트나 벤자민 프랭클린과 같은 실존 인물 사이에 넣어 진실인 양 밝힌다. 하지만 트루먼 셰이디는 가상의 인물이다. 사실 사이에 숨은 거짓이 얼마나 진실해 보이는지 관객을 직접 속이는 강수를 둔다. 유쾌한 배신감 덕분에 묘한 미소가 번진다.

벌써 설경구와 네 편의 작품을 함께한 변 감독은 “설경구의 어떤 모습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그 고민이 이해가 간다. 걸음걸이부터 크게 박힌 점, 과한 표정과 저자세 등 모든 모습이 멋대가리 없는 아무개에게 진정한 멋을 담아냈다. 설경구가 거쳤던 엘리트 인물보다 아무개가 멋있다.
홍경은 제대로 빛난다. 엘리트 관제사이자, 진심을 가진 청년의 얼굴이 드러난다. 류승범은 주 무기로 칼춤을 췄고, 윤경호도 얼굴이 나올 때마다 공기를 바꾼다. 우아한 척 권력을 휘두르는 영부인을 맡은 전도연은 또 한 번 영역을 확장했다. 박영규와 최덕문, 전배수, 오민애 등 수많은 배우가 잠깐의 등장만으로도 밀도 높은 공기를 만든다. 한 땀 한 땀 장인정신을 발휘해 캐릭터에 양면성을 부여한 변 감독의 힘이다.

‘굿뉴스’는 1970년대 역사극을 불과 몇 개월 전 벌어진 일처럼 시대와 맞닿게 하는 시의성을 확보했다. 창작자가 말하고자 하는 가치를 독특하고 신선한 영화적 문법으로 풀어냈으며, 그 이야기 자체도 흥미진진하다. 한국 영화계에 더없이 귀한 감독의 탄생이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