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김미영 기자] 한국인의 일상 깊숙이 파고든 ‘새벽 배송’ 시스템이 중대한 기로에 섰다. 전국택배노조(택배노조)가 제안한 ‘심야 배송 금지’가 노동권과 편의성 사이의 뜨거운 사회적 딜레마로 떠오른 가운데, 특히 맞벌이 부부와 워킹맘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이들은 새벽 배송이 단순한 ‘편의’를 넘어 ‘필수’가 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이 셋을 키우며 일을 하는 김미연(50) 씨는 5일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새벽 배송이 없으면 맞벌이를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퇴근 후에 아이가 다음 날 조별 과제 때 필요하다고 해서 급하게 새벽 배송을 시킨 적이 있다”며 “늦게까지 하는 대형마트에 가려면 한밤중에 애들 데리고 사람 많은 서울역까지 나가야 한다”고 토로했다.

김 씨의 사례는 새벽 배송이 촌각을 다투는 맞벌이 가정의 예기치 못한 공백을 메워주는 핵심적인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외동딸을 키우는 워킹맘 이주희(42)씨는 “새벽 배송으로 식재료를 받아 아이 간식을 간단히 만들어 놓고 출근한다”며 “새벽배송 없었으면 (아이가) 라면이나 떡볶이만 먹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씨의 우려는 새벽 배송이 단순히 물건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자녀의 영양과 건강까지 책임지는 중요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신선한 식재료를 제때 공급받지 못할 경우, 아이들의 식단이 인스턴트 식품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공포다.

인천에 거주하는 한유진(38)씨 역시 “대부분의 새벽 배송으로 장을 본다”며 “퇴근길에 사람 많은 곳에 가서 장보기도 힘들고 물건 고르는 것도 스트레스”라며 “새벽 배송은 내 삶의 혁명”이라고 극찬했다. 한 씨의 말처럼 새벽 배송은 일과 육아, 가사라는 ‘삼중고’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휴식과 심리적 여유를 보장하는 혁신적인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이번 논란은 지난달 22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택배노조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출범한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새벽 배송을 금지할 것을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논란이 일자 택배노조는 “가장 위험한 시간대의 배송 업무를 제한해 택배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수면 시간과 건강권을 보장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아침 일찍 받아야 하는 긴급한 품목에 대해서는 사전 설정 등을 통해 기존처럼 받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노동자의 과로와 야간 노동의 위험성을 줄여야 한다는 대의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만, 그 방식이 소비자들의 ‘필수 서비스’를 제한하는 형태가 되자 거센 역풍에 부딪힌 모양새다.

업계는 그야말로 ‘좌불안석’이다. 새벽 배송은 쿠팡, 마켓컬리, SSG닷컴 등 주요 이커머스 기업들의 핵심 경쟁력이자 비즈니스 모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새벽 배송이 한국 사회에 이렇게 깊숙이 침투해 있는지 이번 사태를 통해 알게 됐다”며 “새벽 배송의 대표주자인 쿠팡이 어떤 조처를 하기는 매우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어떠한 대응이 자칫 노사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슈가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지 유심히 보고 있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mykim@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