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용일 기자] 요즘 승마를 즐기고자 하면 ‘말타’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누구나 가까운 승마장의 시설, 말의 상태 등을 확인하고 예약해 체험하는 시대다. 10~20분 체험은 3~4만 원에도 가능하다.

그러나 과거의 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과 귀족의 전유물이다. 고대 무덤의 벽화나 중세 회화에서도 왕이나 장수, 관리가 말을 타고 행차하는 장면은 익숙한데 평범한 백성이 말을 타는 건 볼 수 없다. 조선시대 말 한 필 가격이 노비 2~3명과 비슷했다는 기록만 봐도 그렇다.

소수 지배층만이 말을 소유했기에, 말은 ‘고귀’한 존재가 됐다.

이를 명확히 보이는 게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여러 종류의 말갖춤(마구). 고대엔 왕과 왕족의 무덤 속 껴묻거리(부장품)로 출토됐는데 말의 재갈부터 안장, 말방울, 말띠꾸미개와 드리개가 무덤 주인의 왕관이나 장신구만큼 금, 은, 동을 사용해 정교하고 화려하게 제작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왕관에 달린 떨잠 모양의 말띠꾸미개는 말의 몸에 드리우는 여러 개의 끈이 교차하는 지점을 고정, 동시에 꾸미는 마구다.

말의 가슴에 달아 소리로 귀신을 쫓고 도난이나 충돌 사고를 예방하고, 화려한 장식의 기능까지 한 말방울도 신분을 표현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무관의 관직에 따라 금, 은, 동, 철 등의 재질이 다른 방울을 사용해 병사를 지휘했다. 대부분 말방울은 청동이나 금동으로 제작했는데 한국마사회 말박물관엔 통일신라시대 지름 10㎝ 가량의 크고 아름다운 순은방울 한 쌍이 전시돼 있다.

말 등에 얹어 방석처럼 쿠션 역할을 하는 안장도 마찬가지다. 삼국시대 것만 봐도 화려하다. 앉는 부분인 좌목은 나무라 썩어 없어졌지만 금속으로 만든 앞가리개와 뒷가리개는 남아 있다. 얇은 금동판 두 겹을 용문이나 당초문으로 파내고 그 사이 비단벌레 날개를 펴넣어 옥색이 비치게 만든 것도 있다. 무덤 주인이 멋지게 차린 말을 타고 저승에 가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이처럼 소수에게 허락된 말갖춤의 유행은 천 년을 넘게 이어오다가 15세기에 들어와 큰 변화를 맞이한다. 유교를 숭상하는 조선의 개국으로 생활 전반에서 사치를 금하고 검소와 절제를 요구해서다. 의식주가 그러했듯 말갖춤도 소박하고 실용적인 형태가 주류를 이뤘다. 금은동을 사용한 안장은 찾아보기 어렵다. 비교적 귀한 재료가 앞뒤 가리개에 덧댄 상어가죽(沙魚皮)이다. 최근 유행한다는 ‘조용한 럭셔리’ 브랜드 제품처럼 무늬도 없다. 이마저도 고위직인 정삼품 당상관 이상만 사용할 수 있게 한 규정이 ‘경국대전’에 명시됐으니, 얼마나 강력하게 말갖춤 장식을 제한했는지 알 수 있다.

경기도 과천시에 소재한 한국마사회 말박물관에는 고종황제의 일곱째 아들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이은(李垠1897~1791)이 사용한 검은색 나무 안장도 있다. 나무틀에 면포를 씌우고 흑칠을 했다. 앞가리개에 사슴뿔을 사용해 상감기법으로 기린문양을 새겨 넣었다. 기린(麒麟)은 말의 몸에 날개가 있고, 입에서 상서로운 기운을 뿜어낸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조선 단종 이래로 제왕의 적자를 상징해 대군의 흉배와 관대 등에 사용했다. 기린문에 금분을 입혔으나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절제한 아름다움이 조선에서 이어지는 미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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