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영화 한 편을 본다는 행위가 점점 ‘각오’에 가까워지고 있다. 러닝타임 2시간 남짓이 당연하던 시절은 이미 옛말이다. 이제는 2시간을 넘어 3시간, 혹은 4시간에 육박하는 영화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과연 많이 보면 좋은 것일까, 아니면 너무 많은 것일까.
최근 할리우드에선 마블 신작 ‘어벤저스: 둠스데이’의 러닝타임이 무려 3시간 45분에 달할 것이란 가십이 흘러나왔다. 아직 공식 확인은 없지만, 인터미션(중간 휴식)이 제공될 수 있다는 루머까지 더해졌다.
이미 러닝타임 3시간대 영화는 새로운 도전이 아닌 ‘하나의 선택지’가 됐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3시간 35분이라는 상영 시간에 15분의 인터미션을 포함했다. 이는 단순한 편의 장치가 아니라 영화 속 서사를 1부와 2부로 나누는 연출적 장치로 기능했다.
현재 할리우드 대작을 중심으로 러닝타임이 길어지고 있다. 과거 블록버스터가 2시간 안팎의 서사를 압축했다면, 이제는 방대한 세계관과 캐릭터 군상을 담아내기 위해 3시간 이상을 과감히 투자한다. 특히 이 흐름은 SF 장르에서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시리즈다. 2022년 개봉한 ‘아바타: 물의 길’은 192분, 최근 공개된 신작 ‘아바타: 불과 재’는 197분이라는 러닝타임을 내세웠다. 거의 3시간 20분에 육박한다. 이에 대해 카메론 감독은 “같은 돈을 내고 더 길게 보면 좋은 것 아닌가. 영화가 형편없지 않은 이상 불평할 이유가 있나. 같은 돈 내고 소고기가 더 나오면 좋은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관객들 사이에서도 이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반응은 적지 않다. 좋아하는 시리즈, 애정하는 세계관을 더 오래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다. 캐릭터의 감정선은 더 촘촘해지고, 세계관은 더 풍성해진다. 한 편의 영화가 아닌 ‘하나의 체험’에 가깝다.
그러나 반대의 시선도 만만치 않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긴 러닝타임이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된다. 상영관 회전율 문제는 물론, 관객의 집중력과 체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숏폼 콘텐츠에 익숙해진 시대 흐름과는 정반대의 방향이라는 지적도 따른다.
“영화를 보러 가는 데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졌다”는 말은 농담처럼 들리지만, 현실이다. 3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은 생리현상에 대한 걱정부터 일정 조율까지 고려하게 만든다. 아무리 기대작이라도 ‘오늘은 힘들다’는 이유로 미뤄지기 쉬운 조건이다.

결국 러닝타임 논쟁은 길고 짧음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와 설득의 문제다. ‘이야기가 그 시간을 요구하는가’ ‘관객이 그 시간 동안 붙잡혀 있을 만큼 충분히 설득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긴 러닝타임은 ‘풍성함’이 아닌 ‘과잉’이 된다.
‘브루탈리스트’가 인터미션을 연출로 승화시켰던 이유, ‘아바타’ 시리즈가 긴 러닝타임에도 관객을 붙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이야기의 밀도와 완성도에 있다. 반대로 러닝타임이 길다는 사실만으로 기대를 모았다가, 서사의 힘을 증명하지 못한 작품들은 빠르게 피로감을 남겼다.
러닝타임 4시간의 시대가 가까워졌다. 영화는 지금 ‘다다익선’과 ‘과유불급’의 갈림길 한가운데에 서 있다. sjay0928@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