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유명 배우들이 예능 출연을 고사하는 이유로 연기하는 데 캐릭터의 폭을 좁힐까 우려된다는 점을 든다. 사실 근거 없는 주장이다. 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낸다고 해서 배우의 이미지가 코믹화되진 않는다. 적어도 배우 이광수처럼 웃기지 않는다면 그렇다. 폭격에 가까운 ‘예능의 신’ 이광수만이 예능 때문에 역할의 폭을 좁힌 유일한 사례에 가깝다.

최근 윤경호가 이광수의 강력한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각종 예능에 등장한 윤경호는 타고난 이야기꾼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키워드에 따른 에피소드를 무한 제공한다. “더 이상 웃길 게 없다”고 해놓고 2시간은 혼자 떠들고 있다. 키워드 하나만 던져지면 “그 얘기를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는데”라는 도입부로 스타트를 끊고 끝내 강력한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유튜브 채널 ‘채널 십오야’의 ‘나영석의 나불나불’, ‘핑계고’에서 윤경호의 활약은 무서울 정도다. 오죽하면 연예계에서 말 많기로는 ‘1타 강사’에 해당하는 주지훈과 김남길을 불러놓고도 마이크를 독식하는 파괴력도 선보였다.

단순히 말만 많았다면 문제였겠지만, 단숨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몰입도 높은 도입부부터 몇 마디 하지 않아도 터지는 펀치라인, 깔끔한 끝맺음까지 기승전결이 완벽하다.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에 끌려가다 보면 결국 헉헉거리며 가슴을 부여잡고 웃게 된다.

아무리 평소 유머감각이 탁월하다 해도 이토록 높은 타율로 웃기기란 쉽지 않다. 특히 ‘핑계고’ 100회 특집은 2시간가량의 분량이었다. 1시간 내외로 업로드해 왔던 것과 달리 이 회차는 2시간이란 강수를 뒀다. 놀랍게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던 건 윤경호의 이야기가 하나같이 압도적인 재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 ‘관상’ 출연 당시 이정재와의 에피소드는 주위를 초토화시켰다. 더할 나위 없는 100회 특집 주인공이었다.

윤경호는 코믹 장르에서 주로 두각을 나타냈다. 영화 ‘완벽한 타인’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후로 크고 작은 역할에서 두루 감초 연기를 선보였다. 지난해 출연한 MBC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유일하게 웃음기를 완전히 제거한 작품이다. 가벼움을 허용하지 않고 묵직하게 밀고 나갔다. 스스로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집중력을 최대치로 발휘했다. 워낙 스킬이 좋고 표현 방법이 다양한 배우라 웃길 만한 포인트가 더러 있었음에도 꾹 참았다고 했다.

개봉을 앞둔 ‘메소드 연기’에서는 코믹적인 연기를 기술적으로 표현해내면서도 인물이 가진 묵직함을 그려냄으로 웃기지만 우습게 볼 수 없는 동태를 만들었다. 이기혁 감독 역시 유쾌한 웃음 속에서 묵직함을 표현할 배우로 윤경호를 점찍었다. 예능이 있기 전에 본업에서 이미 탁월한 능력을 갖췄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의 활약은 다소 혼란스럽다. 예능에서 재밌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대중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는 의미 있지만, 지나치게 웃기다 보니 대중의 뇌리에 예능적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각인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생겨서다. 극에 온전히 몰입해야 할 순간에 예능에서의 유쾌한 입담이 먼저 떠오른다면, 겨우 확장한 캐릭터 스펙트럼을 스스로 좁히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힘이 있어 기우에 불과할 것 같음에도, 이토록 웃기는 모습이 배우로서는 꼭 득만 될 것 같지 않아 기분 좋은 걱정이 든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