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 속 황동만(구교환 분)은 보고 있기만 해도 괴롭다. 스스로 리트머스지라고 하면서 자신에게 선한 사람에겐 선하게, 악한 사람에게 악하게 대한다는 황동만. 마주하는 세상 대부분이 알칼리 성분인지 늘 독하게 응대한다. 쉼 없이 떠드는데 부정적이고 공격적이다. 이토록 정신 사납게 말을 쏴대는 이유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다. 모두가 자신을 불편히 여기는 공간에서 떠들지라도 않으면 공기에 잡아먹힐 것 같은 공포가 온몸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 불안을 정확하게 낚아챈 인물이 변은아(고윤정 분)다. 황동만을 뒤에서 욕하는 8인회를 향해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공포에 쩔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어떻게 조용히 있어”라는 반박은 황동만의 고통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황동만에게 있어 변은아는 몇 안 되는 산성이다.
‘모자무싸’는 인류애에 대한 보고서다. 표면적으로는 이성적인 사랑을 말하지만, 사실상 불안과 혐오에 찌든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손길이다. 그 불안을 다독여주는 얼굴은, 그 역시 버림받는 불안에 몸서리치는 변은아다. 변은아를 맡은 고윤정은 차분한 표정으로 박해영 작가가 담으려 했던 인류애의 얼굴을 담담히 표현하고 있다.

변은아는 황동만을 꾸짖지 않는다. 굳이 고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들어줄 뿐이다. 그에게 “감독님은 천 개의 문이 열려 있는 것 같다”며 오히려 칭찬하고 응원한다. 덕분에 하루하루 무가치하게 과거의 시나리오만 끌어안고 살아가던 황동만의 죽은 엔진에 생명력이 깃들었다. 생기가 돌고 미소가 피고 생산적인 활동에 매진한다. 불편하던 주위 친구들은 어느덧 황동만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인다. 오물 피하듯 괴로워했던 과거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변화다. 변은아의 작은 손길이 한 사람의 우주를 바꾼 셈이다.
고윤정의 연기가 빛나는 지점은 철저한 절제에 있다.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요동치는 구교환의 에너지 앞에서도 고윤정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그의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온기를 전할 뿐이다.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는 수용의 과정을 특유의 깊고 차분한 눈망울과 미세한 표정 변화만으로 설득력 있게 채워 넣는다. 극한의 찌질함마저 품어내는 변은아의 넉넉한 마음이 고윤정의 정적인 연기를 통해 비로소 숨을 쉰다.

놀라운 대목 또 하나는, 철저히 평온해 보이는 얼굴 이면에 숨겨진 결핍을 꺼내놓는 순간이다. 아홉 살에 부모에게 버려진 트라우마로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마다 코피를 쏟아내는 변은아의 내면은 자폭하고 싶도록 복잡하다. 속 끓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탓에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듯 어떻게 살고 싶은지조차 잊을 정도로 고단하다.
고윤정은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왔지만 속은 곪아 터진 변은아의 슬픔을 과장된 오열 대신 무너져 내리는 시선과 텅 빈 얼굴로 묘사한다. 타인의 상처를 끌어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상처 앞에서는 위태롭게 흔들리는 감정선은 고윤정이 얼마나 넓은 영역에서 연기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구교환과 고윤정의 조합은 다소 이질적이다. 아무리 가진 것 없는 변은아라 해도, 고통스러운 황동만을 무조건적으로 챙기는 것엔 현실적인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중이 이 조합에 완벽히 설득당하는 건, 혐오와 조롱이 익숙한 이 시대에 우리가 그토록 바랐던 ‘인류애’를 고윤정이 가장 단단하고 맑은 얼굴로 구현한 덕분이다.

특유의 화려한 외모를 앞세운 톡톡 튀는 이미지를 넘어, 박해영 작가의 깊은 철학마저 담담히 짊어졌다. 고윤정이 그려낸 결코 쉽지 않은 그 절제의 미학이 ‘모자무싸’ 안에서 찬란하게 만개하고 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