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ㅣ이승무 기자] 석주 이상룡 선생 94주기 추모식이 13일 국립서울현충원 임정요인 묘역에서 엄수됐다. 이날 추모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이자 신흥무관학교 설립을 이끈 석주 이상룡 선생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추모식에는 유족과 국무령이상룡기념사업회 회원, 고성이씨 종친회 관계자들이 참석했으며, 내빈으로 참석한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박찬대 인천광역시장 당선자, 이훈기 국회의원이 각각 추모사를 진행하였다. 특히 이훈기 국회의원과 박찬대 인천광역시장 당선자는 각각 고성이씨 종친회와 임청각 외손 자격으로 그간 추모식에 꾸준히 참석해왔으며, 올해 94주기 추모식에도 함께해 선생의 뜻을 기렸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일제강점기 전 재산을 바쳐 만주로 망명한 뒤 경학사와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 계열 독립운동 기반을 세우고, 서로군정서 독판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내며 무장독립운동과 임정의 정통성을 이끈 대표적 독립운동가다. 선생은 1925년 국무령 취임사에서 국민의 뜻에 기초한 책임과 완전한 독립의 성취를 강조하며, 민중의 단합과 실천을 독립의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기념사, 추모사 낭독과 헌화 및 분향, 독립군가 제창, 유족 감사 인사말 진행으로 선생의 독립운동 정신과 국민통합의 가치를 되새겼다.

고성이씨 대종회 이익환 회장은 “석주 선생의 삶은 한 가문의 역사를 넘어 대한민국의 정신사”라며 “석주 선조께서는 개인적인 모든 것을 희생하며 국가를 위한 일에 헌신하신, ‘우국위민’의 정신을 철저히 실천한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정신은 우리 문중의 정신사로 이어져 왔고, 이를 고성이씨 문중의 ‘가풍’으로 일부 표현되기도 한다”며 “오늘의 추모가 기억에 그치지 않고 후대의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석주 선생의 직계 이창수 종손은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선조의 삶을 기억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후손으로서 그 뜻을 잊지 않고 계승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이승율 국무령이상룡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석주 이상룡 선생은 만주 망명, 신흥무관학교 설립,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취임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사의 중추를 이룬 분”이라며 “기념사업회는 선생의 공적이 역사적 위상에 걸맞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새 사료와 법률적 근거를 토대로 건국훈장 훈격 재심 청구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무령이상룡기념사업회는 앞으로도 석주 이상룡 선생의 독립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널리 알리고, 선생의 공적이 올바르게 계승·평가될 수 있도록 관련 사업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한편, 안동 임청각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자 독립운동의 산실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에서 일제가 집안의 정기를 끊기 위해 철길을 집 한가운데로 내는 장면의 실화 모티브로도 알려져 있다. 실제 임청각도 일제가 1941년 중앙선 철로를 마당을 가로지르도록 놓으며 큰 훼손을 입었고, 이 때문에 임청각은 단순한 고택을 넘어 독립운동의 맥을 끊으려 했던 식민 지배의 상흔을 보여주는 역사 현장으로 기억된다. 국가유산청의 종합계획에 따라 임청각은 2019년부터 단계적 복원 사업이 추진됐으며, 현재 막바지 공정이 진행중이다. 철로 대부분은 철거됐고 일부 구간은 교육 공간으로 보존됐으며, 역사문화공유관 개관과 재현가옥 복원까지 이어지면서 임청각은 본래의 위용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 석주 이상룡 선생은 1858년 경북 안동 임청각에서 태어나 1911년 서간도 삼원포로 망명한 뒤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세우며 독립운동의 기반을 닦았다. 1914년 서로군정서를 창설하고 독판에 취임했으며, 신흥무관학교 계열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192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에 올라 임정의 정통성과 독립운동 진영의 통합에 헌신했다. 1932년 중국 길림성 서란현에서 서거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고 1996년 국립서울현충원 임정수반 묘역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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