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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왼쪽)와 박태환.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스포츠속에 숨어있는 가장 매력적인 코드는 무엇일까? 끝없는 도전을 통한 인간 한계의 극복이다. 현실세계에서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인간의 영역을 하나 하나 깨뜨려가는 게 바로 스포츠의 역사다. 한국 스포츠는 짧은 시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우리 사회의 흐름과 맥을 같이 했다. 압축성장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스포츠 역시 결과와 성과에 포커스를 맞춰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스포츠는 국가 위상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됐고,결국 한국 스포츠는 각 종목의 균형적인 발전과는 상당한 거리를 둔 채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기 쉬운 종목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던 게 사실이다. 한국이 세계 10대 스포츠강국의 반열에 올랐지만 여전히 기초종목에 취약한 이유다.

육상과 수영 등 기초종목의 취약성은 이젠 더 이상 문제제기의 차원에서 머물 사안이 아니다. 한국이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한 1980년대 이후 한 세대가 훌쩍 지나도 도무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중국 베이징에서 막을 내린 2015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기초종목 육성에 대한 위기의식을 더욱 고조시켰다.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육상의 약진이 두드러진 가운데 한국은 제 자리걸음을 되풀이했다. 경보 남자 20km 김현섭(30·삼성전자)이 유일하게 톱 10에 진입해 체면을 세웠을 뿐 나머지 11명은 또 다시 세계의 벽을 절감하며 고개를 숙였다.

한국 체육계가 기초종목 육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게을리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에 대한 환상 또한 이러한 경향에 단단히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천재에 대한 환상은 한국 스포츠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분위기다. “어디 풍족한 적이 있었나? 한국 스포츠는 곳간이 빌 때가 되면 느닷없이 재능있는 한 두명이 툭툭 튀어나온다”고 한 어느 원로 체육인의 식견은 놀랍다. 정말 그랬다. 그 얇은 선수층에서 명맥이 끊어질라치면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천재가 툭툭 튀어나와 그 명맥을 잇곤 했다. 그런 천재에 대한 갈망과 환상이 한국 스포츠계에 만연해 있는 게 사실이다.

수영의 박태환이나 피겨의 김연아가 보여준 기적의 퍼포먼스는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국의 스포츠 토양에서,그리고 수영과 피겨라는 아시아인이 넘보기 힘든 그 종목에서 두 선수가 보여준 위대한 퍼포먼스는 뼈를 깎는 노력이 밑바탕이 됐겠지만 우선은 타고난 재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한국 스포츠계는 부지불식간에 이러한 ‘백마 탄 천재’에 대한 환상에 푹 빠져 있다. 저마다 기초종목 육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는 있지만 정작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초종목 육성의 해답은 시스템이다. 최근 중국과 일본이 육상에서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도 자신들의 특성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정부를 비롯해 체육단체,학교,커뮤니티 등이 육상 발전을 위해 선순환적 스포츠 생태계를 이룬 게 결정적이다. 천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 그러나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면 또 다른 천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시스템이 구축되면 차원이 달라진다. 천재를 또 만들 수 있게 된다. 천재를 기다리는 스포츠와 천재를 만들어내는 스포츠는 천양지차다. 기초종목 육성은 요행을 바라며 천재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통해 천재를 만들어내는 게 바람직한 해법이다.

고진현의창과창

체육1팀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