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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스포츠서울 이정수기자]지난 3월 남자 배구대표팀 명단에는 낯선 이름이 포함됐다. 2016 국제배구연맹 월드리그를 준비할 25명의 예비엔트리를 발표했는데 프로배구 V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즐비한 가운데 유일하게 고교생이 포함됐다. 1999년생, 올해 17세인 제천산업고의 라이트 공격수 임동혁이었다. 2016 리우올림픽 본선진출이 좌절된 대표팀은 2020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중장기적인 대표팀 강화 대책으로 어리고 성장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을 불러들여 대표팀 선배들과 훈련할 수 있도록 했다. 임동혁이 국가대표팀에 선발될 정도로 성장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임동혁이 활약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그와 최상의 호흡을 맞춰주는 동갑내기 레프트 임성진이 있기 때문이었다. 수비력이 좋은 임성진이 공을 받아주면 임동혁이 뛰어올라 마무리짓고, 임동혁이 막히면 임성진이 득점한다. 눈빛만 봐도 서로 통하는 차세대 공격수들. 이들이 올곧게 성장해나간다면 향후 십수년간 한국 배구는 이들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 틀림없다.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임동혁과 깔끔한 미남상의 임성진은 그 외모로도 오랜시간 주목받을 것 같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커온 배구 꿈나무들임동혁은 어릴적 배구가 아닌 테니스를 배웠다. 신백초 3학년 때부터 ‘한국 테니스의 미래’로 꼽히는 이덕희(18)와 함께 운동을 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해 의림초 안미정 코치의 눈에 띄었다. 그 어린 나이에 키가 155㎝ 가량이나 됐으니 눈에 띄지 않았을 리가 없다. 임동혁은 “키가 크다보니 선생님이 배구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하셨다”면서 “배구가 힘들 때도 있지만 동료들과 분위기를 맞춰가면서 함께 해나간다는 즐거움이 있다. 집중력과 팀워크가 필요한 만큼 다른 스포츠보다 짜릿한 쾌감이 있다”고 말했다. 개인종목이 아닌 단체종목이 그에게 맞았던 셈이다.
몇 개월 뒤 임성진도 잘 다니던 용두초를 떠나 의림초로 전학했다. 당시 150㎝ 가량이었던 그는 배구를 해보겠느냐는 제의를 들은 후 여름방학동안만 경험삼아 해보기로 했다가 배구의 재미를 알아버렸다. 임성진의 모친 신미영(42) 씨는 “여름방학 때 잠깐 해보고 결정하자고 했는데 힘들어하면서도 운동을 좋아하더라. 배구를 시작한 이후로 운동을 하기 싫다고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임성진은 “운동이 힘든 것은 사실인데 하고 싶었다. 중학교 때 키가 급격히 크면서 성장통이 심했을 때는 혼자 고민도 했는데 팀원들과 함께 운동하면 또 잊어버렸다”고 전했다. 그도 배구의 매력을 점수 하나하나를 팀 동료 모두가 다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찾았다.
중학시절부터 그들을 지도했던 김광태 제천산업고 감독은 두 선수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둘 모두 키가 큰 선수들답지 않게 운동신경이 좋고 빠르다”며 “동혁이는 테니스하던 스윙 폼이 남아있어 교정중이다. 어렵게 올라온 공도 과감하게 때려내는 대범함이 있다. 성진이는 주어진 훈련시간에 열과 성을 다하는 매우 성실한 선수다. 어지간히 아프지 않고서는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고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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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민의 파이팅, 송희채의 안정감. 배우고 싶어요.
오랜시간 함께 운동하며 꿈을 키워온 사이라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눈빛만 봐도 서로의 플레이를 알아챌 수 있는 호흡을 자랑한다. 서로 여자친구와 만난지 며칠이 됐는지까지 알 정도로 툭 터놓고 친한 사이다. 임동혁은 “지금 라이트 포지션을 맡고 있는데 프로에 가면 외국인 선수들이 있는 만큼 내 역할은 레프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수비능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성진이는 기본기가 좋은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성진이는 외모도 주목받는 부분인데 배구에 집중하면 좋겠다”는 농담도 빼놓지 않았다. 임성진은 “경기에 나서면 중요한 순간에 생각이 많아지고 조마조마하면서 자신감이 떨어지곤 한다. 개선해야 한다”면서 “동혁이는 팀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중학교 시절부터 공격점유율이 높아 부담이 클텐데도 중요한 순간에 과감하게 포인트를 해결해 준다”고 친구에게서 배울 점을 찾았다.
공격의 마침표를 찍어야하는 라이트 포지션 선수답게 임동혁의 롤모델은 한국 대표 공격수 문성민(현대캐피탈)이다. “솔직히 포인트를 내야하는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인데 문성민 선수처럼 파이팅 넘치는 스타일을 좋아한다. 카리스마로 동료들을 아우르고 팀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모습이 좋았다. 나도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이 임동혁의 바람이다. 수비에 강점을 가진 레프트 자원 임성진은 공수에서 안정적인 활약을 하는 송희채(OK저축은행)를 롤 모델로 꼽았다. 그는 “송희채 선배의 경기를 보면서 많이 배우려고 한다. 서브 리셉션과 기본기가 좋은 선수여서 비슷한 역할을 해야 하는 내가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키가 200㎝에 다다른 임동혁은 강하게 내리 꽂는 스파이크가 위력적이다. 193㎝로 작지 않은 임성진은 손목을 이용해 방향을 틀어치는 기술이 있다. 아직 키도 실력도 성장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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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는 아직 부담, 전국체전부터 제패하자.
임동혁은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임성진은 유스대표로 뽑히며 주목받았다. 임동혁은 “사실 대표팀에서 훈련해보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대표팀에 들어가기에는 어리다. 1~2년 선배들과 함께 운동하는 것도 부담이 적지 않은데 대표팀에 가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못할 것 같아 걱정이 앞섰다”고 말했다. 임성진은 달랐다. “동혁이가 대표팀에 뽑힌 것을 보고 부러웠다. 아무나 대표팀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동혁이가 가진 가능성이 인정받았다는 뜻이니까.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 열심히 해보자는 다짐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서로 가장 믿을 수 있는 친구 사이지만 자극을 줄 수도 있는 선의의 경쟁자기도 했다. 하지만 둘에게 프로팀과 국가대표팀은 아직 먼 얘기였다.
제천산업고는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마낙길 이성희 등 쟁쟁한 선배들이 활약했던 지난 1985년 이후 30년 만의 우승이었다. 임동혁은 주력 라이트로 활약했고 임성진은 선배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백업요원의 역할을 맡았다. 올해는 우선 충청북도 대표로 뽑혀 전국체전에 출전할 자격을 얻는 것이 우선이다. 진정한 승부의 시점은 두 선수가 팀의 최선참이 되는 내년으로 잡았다. 임동혁은 “대표팀에 뽑혔을 때 팀 동료들에게 많이 미안했다. 팀 동료들이 열심히 해준 덕분이고 내가 키가 커서 공격을 많이 했을 뿐 월등한 실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면서 “성진아. 내년에 정말 잘해보자. 힘을 모아 제천산업고에서 전국체전 우승을 꼭 이루고 졸업하자”고 각오를 다졌다. 임성진도 맞장구를 쳤다. 그는 “내년은 대학에 진학하기 직전 시즌이다. 어쩌면 동혁이와 한 팀에서 뛸 수 있는 마지막 한 해가 될 수도 있다”면서 “동혁아. 지금은 선배들이 있지만 내년에는 우리가 선참이다. 팀을 잘 이끌어서 꼭 좋은 성적을 내고 대학에 가자”고 화답했다.
둘의 실력과 인성, 꿈과 욕심을 알고 있는 김광태 감독은 “내가 복이 많아 좋은 선수들과 함께 운동하고 있다. 저 선수들은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더욱 발전할 것이다. 앞으로 필히 눈여겨 지켜봐야할 선수들”이라고 응원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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