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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투수라면 누구나 150㎞, 160㎞를 던지는 강속구 투수를 꿈꾼다. 아무리 제구가 좋아도, 아무리 뛰어난 변화구를 갖고 있어도 빠른 직구로 타자를 압도하는 장면을 늘 상상한다.
LG 선발투수 임찬규(25)도 그렇다. 예전보다 제구력이 안정되고 커브와 체인지업이 향상됐음에도 신인 시절 빠른 공을 던졌을 때의 모습을 그리워 하고 있다.
2011년 고졸 신인이었던 그는 당시 65경기 82.2이닝을 소화하며 9승 6패 7세이브 방어율 4.46 탈삼진 62개를 기록했다. 숫자에서 드러나듯 지금은 대부분의 구단들이 신경 쓰고 있는 ‘신예 투수 관리’와는 거리가 먼 길을 걸었다. 불펜 추격조부터 셋업맨, 마무리투수를 거쳤고 시즌 막바지에는 선발투수로도 마운드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2일 연속으로 12번, 3일 연속으로 2번 등판했다.
결국에는 탈이 났다. 140㎞ 후반대였던 직구 구속이 시간이 흐를수록 떨어졌다. 전반기까지 방어율 2.70으로 호투하며 불안했던 LG 불펜진에 빛이 됐으나 후반기에는 방어율이 6.41로 치솟았다. 2013시즌을 마치고 경찰청에 입대한 그는 복무기간 중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다. 프로 1년차에 집중적으로 쌓인 피로가 결국에는 폭발하고 말았다.
경찰청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재활로 보낸 임찬규는 전역 후 첫 시즌이었던 지난해에도 여유를 두고 1군 복귀를 준비했다. 마침내 선발투수로서 가능성을 비췄고 올시즌에는 지난 6월까지 리그 최고 5선발투수로 활약했다. 아직 구속을 회복하지는 못했으나 향상된 제구력과 경기 운용 능력으로 LG 마운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됐다.
그래도 임찬규의 마음 한 구석에는 파이어볼러였던 자신의 모습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임찬규는 지난 23일 잠실 NC전에서 5.2이닝 9탈심잔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후 150㎞에 가까운 강속구를 던졌던 시절이 그립지 않나는 질문에 “나도 그립다. 하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까. 경기 나가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면서 “스피드를 되찾으려면 또다른 시간이 필요하다. 되찾는다는 확실한 보장도 없다”고 답했다.
실제로 임찬규는 수술 전후로 꾸준히 팔각도에 변화를 줬다. 빠른 공을 던졌을 때보다 더 높이 팔을 올려보기도 했으나 상체가 무너져 제구가 안 됐다. 구속은 어느 정도 나와도 제구가 되지 않으니 타자와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다. 다양한 시행착오 끝에 임찬규는 오히려 팔을 내렸다. 구속은 떨어져도 직구와 변화구의 움직임은 향상됐다. 제구도 이전보다 빠르게 잡혔다. 선발투수로 도약하기 시작한 시점도 스리쿼터식으로 팔을 내리고 난 후였다.
파이어볼러 시절이 그립기는 하지만 선발투수로 잡은 기회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임찬규는 “지금처럼 이렇게 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 본다. 구속 붙으면 더 좋을 것이란 희망도 갖고 있다”며 “그래도 탈삼진 9개면 강속구 투수 아닌가. 변화구로 느리게 했다가 직구를 던지면 직구가 더 빨라 보이지 않겠나. 기록은 강속구 투수 비슷하게 나오니까 만족한다”고 특유의 긍정적인 마음을 드러냈다.
메이저리그에서 너클볼 투수 중 최초로 사이영상을 수상한 RA 디키(43)도 “다시 태어난다면 공이 빨랐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너클볼을 앞세워 최정상에 올랐음에도 다시 불같은 강속구를 던지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디키는 2001년 프로 입단 당시 150㎞대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신체검사 결과 팔꿈치 인대에 문제가 있어 입단 계약금이 취소됐고 긴 마이너리그 생활 끝에 너클볼러로 대반전을 이뤘다. 다른 방향을 찾아 꿈을 이뤘지만 그 역시 투수기 때문에 파이어볼러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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