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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17년 전 선수 시절과 비교하면 (감독 윤정환은) 전혀 다른 사람 같아 보인다.”
지난 22일 일본 J리그 세레소 오사카 훈련장인 마이시마 스포츠 아일랜드에서 만난 구단 미디어 담당 엔만도 야스코(41) 씨는 스포츠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며 방긋 웃었다. 야스코 씨는 세레소 구단에서만 20년째 일하는 베테랑이다. 올해 1995년 J리그 출범 이후 팀에 첫 우승 트로피를 안기는 등 한국인 최초로 J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받은 윤정환(44) 감독이 구단에서 선수로 뛸 때부터 지켜본 산증인이다. 1990년대 국가대표로 뛴 스타 플레이어 출신 윤 감독은 지난 2000~2002년 세레소에서 주전으로 뛰었다. 특히 2001년 팀이 2부로 강등했을 때도 타 팀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잔류를 선택, 이듬해 1부 복귀에 이바지하면서 팬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런 ‘의리’는 지금까지도 세레소 팬에게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라고 한다.
스포츠서울이 훈련장을 찾은 날은 제97회 일왕배(전일본축구선수권대회) 4강전 빗셀 고베전이 열리기 전날이었다. 단판 대결을 코앞에 둔 상황이었으나 윤 감독을 비롯해 코치진, 선수단, 구단 사무국 모두 한국 취재진의 방문에 예민해하지 않았다. 야스코 씨는 오전 9시30분부터 1시간여 진행된 훈련 과정을 모두 공개했다. 그는 “시즌 들어와서 윤 감독은 거의 오전에만 1시간가량 집중적인 훈련을 한다. 겉으로 볼 땐 짧은 시간이나 상당히 훈련이 치밀하게 이뤄지더라. 이게 한국 스타일이냐”고 되물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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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1부로 승격한 세레소는 윤 감독 부임과 함께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르뱅컵(J리그 컵대회)에서 감격스러운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도 모자라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하며 내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냈다. 여기에 일왕배 타이틀까지 노리고 있다. 훈련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시즌을 마치고 휴식기에 들어간 팀이 대다수다. 세레소는 스기모토 겐유 등 주전 요원이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한 가운데서도 일왕배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전술 훈련보다 가볍게 공 돌리기와 미니게임, 슈팅 훈련, 단판 대결을 의식한 페널티킥 훈련으로 1시간을 채웠다. 특히 미니게임에서는 윤 감독이 ‘프리맨’으로 나서 직접 선수들과 함께 공을 찼다. 이는 과거 사간도스~울산 현대 지휘봉을 잡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조깅을 하며 체중 조절을 하는 윤 감독은 현역 때 못지않은 날카로운 패스로 미니 게임의 질을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
야스코 씨는 “윤 감독은 선수 시절 말수가 정말 적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감독이 된 이후에는 자기 생각을 선수, 코치 뿐 아니라 사무국 직원에게도 똑 부러지게 얘기하는 편이다. 자신의 신념에 기반해서 밀고나간다. 믿고 맡기면 책임을 다하는 편이어서 구단의 신뢰가 높다”고 설명했다. 축구 색깔도 선수 시절 중원에서 아기자기한 패스를 구사한 것보다 선이 굵으면서도 효율적인 축구를 펼치는 것에 놀랍다는 반응이다. ‘180도 달라졌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세레소에서만 9년째 활약 중인 국가대표 골키퍼 김진현은 “지난 8년간 우리 팀은 수비진부터 빌드업을 중시하는 팀이었다”며 “감독께서 온 뒤 킥 앤드 러시도 늘었는데 처음엔 선수들이 의문점을 품다가도 적재적소에 선수를 기용하면서 결과가 났다. 지금은 모두가 감독을 믿고 따른다”고 설명했다.
세레소 구단에서 윤 감독 효과를 가장 인정하는 부분은 ‘멘탈’이다. 구단 한 관계자는 “세레소는 최근 1~2부를 오간 탓에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약한 정신력이이 최대의 약점이었다. 그러나 윤 감독이 온 뒤 선수들의 투쟁심이 생기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생겼다. 그게 (우승이라는) 결실까지 이어진 원동력”이라고 했다. 다음 날 열린 고베전에서도 증명이 됐다. 후반 45분 상대에 선제골을 내줬지만 세레소는 포기하지 않고 1분 뒤 추가 시간에 동점골을 터뜨린 뒤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가 가키타니 요이치로의 페널티킥 결승골, 브라질 미드필더 소우자의 쐐기골로 3-1 완승을 거뒀다. 다음 달 1일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요코하마 마리노스와 결승전에서 사상 첫 ‘더블(2관왕)’에 도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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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감독은 “이전에 브라질 감독들이 팀을 이끌었는데 상당히 팀을 자유분방하게 뒀다. 분위기가 들떠 있었는데 잘 될 땐 잘 되지만, 안 될 땐 힘없이 무너지는 경향이 짙었다. 훈련장이 다소 ‘놀자판’ 분위기였다. 부임하자마자 그런 것을 다잡았다. 훈련 시간은 일반 직장인으로 따지면 일하는 시간인 만큼 프로답게 하자고 했다”고 강조했다. 울산 시절부터 동행중인 이성재 코치는 “윤 감독은 경기장이나 훈련장 밖에서는 선수들과 형, 동생처럼 지낸다. 하지만 운동할 때 집중하지 못하면 바로 지적이 나오는데 이젠 선수들이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코치진과 관계도 마찬가지다. 권위 의식이 없다. 간간이 동행할 일이 있을 때 본인이 직접 운전대를 잡고 코치들을 챙기려고 하는 등 서슴없이 다가가더라. 일본인 코치도 감독을 믿고 제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프로 선수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는 윤 감독의 힘은 과거 사간 도스에서도 발휘됐다. 무명의 선수를 이끌고 팀을 2부에서 1부로, 1부에서 선두로 이끌면서 일본어로 귀신이란 뜻의 ‘오니’라는 별명이 따랐다. 이젠 ‘오사카판 오니’로 완벽하게 부활한 셈이다. 세레소 선수들은 올 초 윤 감독 부임 소식을 듣고 그의 스타일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한다. 물론 도스 시절처럼 선수단 전원이 처음부터 따랐던 건 아니다. 감독의 방향에 불만을 품는 선수도 있었다. 세레소에선 공격의 기둥 구실을 한 국가대표 공격수 가키타니가 그랬다. 하지만 윤 감독은 가키타니가 게으름을 피우거나 프로로 적절하지 못한 행동을 할 땐 출전 명단에서 과감하게 제외하며 성적을 냈다. 구단 관계자는 “사실 (가키타니를 선발에서 뺐을 때) 다른 선수도 놀랐다더라. 이전 감독은 그가 어떤 행동을 해도 기용했다. 그런데 윤 감독이 올해 고교 출신 선수 2명을 데뷔시켜 컵대회 우승을 이끄는 등 기질을 발휘하자 가키타니도 그의 비전에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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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소는 감독, 선수들이 훈련장을 찾은 팬들과 소통을 중시하지만 경기 전날엔 사인이나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 그럼에도 이날 100여 명의 팬이 몰렸다. 일부 여성 팬은 윤 감독이 차량을 이용해 빠져나가는 모습이라도 보기 위해서 3시간여를 기다리기도 했다. 미즈모토 마코(30) 씨는 “윤 감독은 한국 특유의 부드러운 인상을 지녔지만 경기장에선 강한 리더십을 갖췄다. 세레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고 웃었다. 일왕배 4강전이 열린 나가이 스타디움 인근 용품샵에서 오니를 형상화한 윤 감독의 캐리커처를 담은 응원용 머플러 등을 판매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더블(2관왕)’을 노리는 세레소를 응원하는 오사카 시민들은 현재 ‘오사카판 오니’ 열풍에 빠져 있다.
kyi0486@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