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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윤종신은 지난해 6월 22일 발표한 ‘좋니’로 가수 인생의 새로운 분기점을 마련했다. 가수로서보다 방송인, 예능인으로 인식돼 가던 그가 가수라는 사실을, 그것도 여전히 괜찮은 보컬리스트라는 점을 대중에게 증명했다.

29년차 연예인인 그는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려운 아티스트다. 1990년 공일오비 객원 보컬로 가요계에 데뷔한 이후 작곡가, 작사가, 프로듀서로 음악적 영역을 확장해 가면서 해당 분야에서 ‘정상급’으로 진화해가는 모습을 보였고, 라디오DJ, 시트콤 배우, 예능인, 방송MC 등으로도 두드러진 활약을 펼쳐왔다.

공교롭게 그의 가장 최근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한 ‘좋니’는 스포츠서울과 생일이 같다. ‘좋니’의 발매일은 지난해 6월 22일, 같은날 태어난 스포츠서울보다 32살 어리다. 최근 진행된 2018 “윤종신 좋니?” 전국투어 콘서트 시작 전 대기실에서 만난 윤종신은 ‘좋니’와 스포츠서울의 인연을 신기해 했다. 공연을 앞두고 있었지만 그는 기꺼이 스포츠서울과 만나 스포츠서울과의 옛 추억, ‘좋니’의 성공, 가수로서의 지난 시간 등을 되돌아보는 자리를 가졌다.

-1990년 그룹 공일오비 객원보컬로 데뷔해 벌써 연예계 생활 29년째다. 돌아보면 어떤 시간이었나.

초창기에는 운이 많이 따랐다. 내 노래 ‘버드맨’(2015년 발표) 가사에 나오지만 20대 때는 내 노력에 비해 큰 박수를 받았다. 30대 때는 20대의 성공을 발판으로 잘 될 줄 알았는데 고전했던 시기다.

그러나 고생했던 30대의 경험이 내겐 큰 자양분이다. 30대 때 많은 시도를 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는데 40대에 다시 잘 되는데 큰 힘이 됐다. 30대에 만약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 여러 악재를 요리조리 잘 피해다녔다면 힘든 40대를 보냈을 것이다.

지난 4월 ‘월간 윤종신’을 통해 공개한 ‘두 잇 나우’ 가사에 썼듯 나는 실패를 덜 두려워 한다. 실패에서 얻은 교훈이 다음, 아니면 그 다음번에 괜찮은 결과물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더라. 그래서 시도 자체를 의미있게 생각한다. 지난 29년간 깨달은 점이다.

-29년간 가수로서 무수히 많은 히트곡을 냈다. 음악 인생을 구분짓는게 가능하다면 시기별 대표곡을 소개해 달라.

90년대 대표곡은 ‘오래전 그날’(1993년 3집 수록곡)과 ‘환생’(1996년 5집 수록곡)이 아닐까 싶다. 내 정서가 잘 담긴 노래다. ‘오래전 그날’은 박주연 작사가의 가사가 돋보이는 곡인데 내 이야기를 노래로 옮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박주연 작사가는 내 작사 스승이다. 그에게 이야기를 노래에 얹는 법을 배웠다.

고생스러웠던 30대 때는 박주연 작사가에게 배운 것을 바탕으로 내 고민을 노래에 옮겨적었다. 30대의 내 대표곡으로 ‘배웅’(1999년 7집 수록곡)과 ‘너에게 간다’(2005년 10집 수록곡)를 꼽고 싶다.

2010년대 이후엔 ‘나이’(2011년 발표),‘오르막길’(2012년 발표), ‘지친하루’(2014년 발표)가 대표곡이다. 내가 기성세대가 되는 과정 속에서 만든 노래들인데 예전엔 내 생각과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들려드렸다면 40대 이후엔 대중에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말을 걸고 있다.

50대 이후엔 내가 어떤 말을 걸지 기대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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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윤종신의 팬들은 잘 알겠지만 ‘명반’으로 꼽히는 앨범이 많다. 스스로 애착을 갖는 앨범은.

지난 앨범 리뷰는 잘 안하는 편이다. 그건 리뷰를 전문으로 하는 분들의 몫이다. 자평은 잘 안하지만 굳이 묻는다면 나는 내 10집 ‘비하인드 더 스마일’(2005년 발매 / 너에게 간다, 몬스터, 서른 너머... 집으로 가는 길 등 수록)을 좋은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적으로, 육체적 힘들었던 2004~2005년 무렵의 생각이 담긴 앨범이라 애착을 갖고 있다.

-그룹 공일오비 객원보컬로 시작해 솔로 가수로 자리 잡았고, 프로듀서·작곡가·작사가로 인정받은 뒤 기획사 미스틱 엔터테인먼트 수장까지 맡는 등 꾸준히 음악적 실력과 커리어를 진화시켰다.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해온 원동력은.

침체기였던 30대 때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그때 그때 시도하는 등 무모했다. ‘그게 될까’ 궁금증을 내가 직접 시도하며 풀었다. 실패 하더라더도 그런 시도가 훗날 큰 힘이 되더라. 궁금하거나 떠오른 아이디어를 그때 그때 작품 등으로 풀어내는 것, 그런 패턴을 이어가려 노력하는 것이 내 발전의 원동력이다.

-예능인, 방송인으로서 행보도 흥미롭다. 90년대 초반부터 라디오DJ, 라디오 게스트 등으로 인기를 모았고, 후에 시트콤(MBC 논스톱4)등에 출연하기도 했고, ‘가수가 아니라 개그맨 아니냐’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TV 예능에서도 맹활약했다. 지금도 MBC ‘라디오스타’ 등을 통해 예능 MC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수로서 뿐 아니라 라디오, 시트콤, 예능 등 다양한 장르를 종횡무진 누비며 변신하는 모습이 신기하다.

‘변신’이 아니다. ‘변신’이라기 보다 ‘적응’이 맞다. 나는 새로운 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새로운 분야에 대해 배타감을 적게 갖는 편이다. 새로운 건 일단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가까이 다가가는 편이다. 좋을 확률이 나쁠 확률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새 분야에 성큼성큼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여러 직업이 있는데, 가장 애착을 갖는 ‘타이틀’은.

예전에는 프로듀서, 작곡가, 작사가라는 이름에 애착을 가졌다. 요즘은 ‘보컬리스트’라는 타이틀에 애착이 간다. 보컬리스트는 사실 노력해도 잘 안되는 분야다. 타고난 재능이 중요하다. 요즘 ‘노래부르는 걸 쉽게 생각하지 말자’는 생각을 자주 한다. ‘보컬리스트’, ‘가수 윤종신’라는 이름에 대한 애착이 나이가 들수록 커진다.

-국내 정상급 작사가로 꼽히는데, 좋은 노랫말로 많은 이들에게 위안과 감동을 준다. 요즘 힘들고 어려운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나는 말보다 노래로 내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나이’(2011년 발표), ‘오르막길’(2012년 발표), ‘지친하루’(2014년 발표), ‘살아온자 살아갈 자’(지난해 발표) 등을 들어보면 내가 젊은 친구, 후배들에게 들려주고싶은 이야기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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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미스틱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