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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김종국이 데뷔 30주년 기념 디너쇼를 개최한다.
개그맨이 디너쇼를 여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인 데다 김종국은 최고의 인기 스타도 아니여서 이례적이다. 심지어 초호화 공연이다.
오는 5월 1일 남산 그랜드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과 2일 삼성동 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이틀간 열린다. 총 관객 2000명이 정원이고, 입장료는 30만원(식사 및 세금, 봉사료 포함)에 이른다. 얼핏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공연이지만 김종국은 진지했다.
“지난 30년을 되돌아보는 자리가 아니라 앞으로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자리다.”
아직 세상은 개그맨 김종국의 진가를 50%밖에 모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미 티켓의 상당수가 소리 소문없이 팔려나갔다. 설운도 한혜진 계은숙 이은하 등 선후배 동료 가수들이 게스트로 나서고, 공연날 특급 비밀 게스트가 등장할 예정이다. 예약 문의 주해실업영상사업단 02)561-6511
-이번 디너쇼에 대해 설명해 달라
개그맨이 이런 디너쇼를 여는 것은 아마 제가 최초일 걸요. 제가 보니, 디너쇼를 하려면 다양한 재능이 필요해요. 우선 노래가 돼야 하는데, 제가 성악을 할 줄 알아요. 개인기도 많아야 하는데 저는 고 김대중 대통령, 고 이주일 선생, 고 정주영 회장 등 최소 20~30명의 다양한 성대모사가 가능하고 뻐꾸기, 개소리, 닭소리 등 못내는 소리가 없어요. 평소 여러 행사에서 ‘유머로 행복하게 사는 법’, ‘리더의 유머 치료법’ 등으로 특강도 자주해 왔어요. 디너쇼를 채울 다양한 컨텐츠는 충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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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이 고가인데 좌석을 다 채울지 궁금하다
주위에서 말렸어요. 네가 무슨 디너쇼를 하냐고. 안된다고.(웃음) 그런데 총 2000장 중 약 1800장 정도가 이미 팔렸어요 제가 평소 인맥 관리에 굉장히 심혈을 기울였거든요. 제가 여러 대학 최고 경영자 과정만 6번을 다녔어요. 제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가 2000개가 넘어요. 이번 행사에도 여러 분들이 많이 올 거예요. 다양한 인맥이 제 힘이거든요. 티켓 가격이 비싼 건 제작비가 많기 들었기 때문이에요. 작가, 밴드 등 이번 쇼 스태프만 20~30명인데, 이들을 모아 최고의 쇼를 위해 한달 넘게 맹연습 중이예요.
-인맥관리에 심혈을 기울인 이유가 있는가
강호동 유재석 신동엽 같은 최고의 엠씨들을 따라잡을 방법이 뭐가 있을지 고민해 보니 나는 인맥 관리라도 해야 버틸 힘이 있겠더라고요. 저는 어디를 가도 5분만 주어지면 다 제 사람을 만들 자신이 있어요. 물론 인맥 관리를 열심히 하다 보면 힘든 점도 많아요. 경조사가 너무 많거든요, 한달에 스무 차례 이상은 경조사를 챙기게 돼요.
-30주년 디너쇼의 의미는 지난 연예계 생활을 돌아보는 자리인가
저는 방송에서 지금까지 제 재능만큼 실력 발휘를 못한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도와줘 이 자리까지 오게 됐지만 저는 욕심이 많아요. 이번 디너쇼는 되돌아보는 자리가 아니라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입니다. 맡아보고 싶은 프로그램도 많고,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저는 코미디언으로 이제 시작 단계이고, 아직 할 일이 많아요.
-어떻게 코미디언으로 데뷔하게 됐나
제가 코미디언 시험만 3번 붙었어요. 고3 때인 81년 MBC 개그맨 공채 1회 때 참가해 장려상을 받았어요. 최양락 이경규 김정렬 엄용수 등이 그때 나왔죠, 그런데 저는 고등학생이라 합격했음에도 활동을 할 수 없었어요. 당시엔 개그맨을 하려면 고등학교를 자퇴해야 했거든요. 84년 또 MBC 개그맨 공채에 나가 인기상을 받았어요. 배영만, 장용이 그때 동기들이에요. 그리고 군대를 다녀와 87년 KBS 코미디언이 됐어요. 그때 동기로는 최형만이 있죠. 그리고, SBS가 개국할 때는 또 옮겼어요. 저처럼 3개 지상파 방송국에서 모두 개그맨으로 활동한 이는 없는 것 같아요.(웃음)
-개그맨 김종국의 개그는 어떤 스타일인가
저는 ‘생활형 개그’죠. 이유가 있어요. 고향 문경의 과수원에서 자랐는데, 우리집까지 단 세가구만 사는 외딴곳이었어요. 저는 중2 때 전깃불을 처음 봤어요. 그렇게 성장하다보니 친구도 없고 외로웠어요. 그래서 혼자 놀다 보니 뻐꾸기, 개소리, 닭소리를 자연스럽게 내게 됐어요. 동물들이라도 친구 삼으려고요. 그런게 지금 와서 개그할 때 도움이 되네요. 그리고 저는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겸손해요. 이경규, 박명수처럼 호통치며 웃기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손해보고 당하더라도, 남을 웃기기 위해서는 본인이 겸손하고 착해야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런게 장점이기도 하지만 간혹 재미없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개그맨이 장수하고 버티려면 아이디어가 많아야 하는데, 저는 제 대본을 직접 쓰거든요. 그런 점도 제 장점이죠.
-개그맨, 리포터, 사회자 등 다양한 역할을 잘 소화해 왔는데 본인이 약한 스타일의 개그가 있는가
공개 방송이나 토크쇼에서 상대의 말을 받아 치거나, 눌러버리는 유형의 화술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사실 여러명이 나오는 토크쇼에서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고요, 전쟁이고, 견제도 심하고요. 저는 그런 경쟁이 싫더라고요. 혼자 설치면 다른 사람이 죽을 수 밖에 없잖아요. 여러 명이 경쟁하듯 멘트롤 치고 나가는 형식에는 제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형식의 토크쇼가 대세에요.
-특별히 엄청난 인기를 끈 때는 딱히 없었던 것 같다
국수 처럼 가늘고 길게 가고 싶어요. 그래서 롤모델이 송해 선생님이에요. 사실 섭섭한 적도 있었죠. 뭔가를 해보려고 하면 슬며시 사라지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도 ‘오래 버티라고 내게 이런 일들이 자주 생기나보다’ 생각하고 말아요. 올라가면 내려와야 하는데, 저는 높이 올라가지 않았으니 내려올 일이 없죠. 제 장점은 적이 없다는 것이에요. 스타는 분명 그를 시기 질투하는 이들이 생기게 마련인데 저에겐 그런 ‘적’이 있을 수 없잖아요. 사실 제 세대가 개그맨으로는 참 불행해요. 시대를 잘못 타고 났어요, 군대를 다녀와 데뷔하니 심형래 임하룡 김정식 최양락 장두석 김미화 등이 높은 산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더라고요. 좀 지나니 이제는 김용만 김국진, 신동엽 등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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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가징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제가 한 최고의 프로그램은 90년대 초반 SBS 꾸러기 대행진의 간판 프로그램 ‘꾸러기 카메라’(92년)였죠. 그 당시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와 쌍벽을 이뤘죠. 당시 제 인기 순위도 꽤 높았어요. 그때가 제 전성기라고 볼 수 있겠네요. 제가 아끼는 두번째 프로그램은 SBS 드라마 야인시대(2002~2003년)에요. 만담가 신불출 역할을 맡았어요. 정극연기로 시청률 50%에 작게나마 이바지 했어요. 당시 제작진이 처음엔 저를 쓰는 걸 불안해 했어요. 그래서 큰 기대를 안했는데 제가 그들 생각보다 연기를 잘 한 거예요. 그래서 원래 4번 나올 분량이 10회 이상으로 늘었죠. SBS의 전국 노래자랑 같은 프로그램인 ‘쇼! 노래하는 대한민국’(2009년)도 애착이 갔던 프로그램이에요. 군대를 다녀온 직후인 87년 무렵 출연한 제 데뷔작 KBS 유머일번지의 ‘동작그만’도 기억에 남죠. 당시 김한국의 졸병 역할로 2년 동안 활약했죠. 그때 그 프로그램 시청률이 40%였어요. 제가 그 코너 때문에 양복 CF 모델까지 했다니까요. 현재 하고 있는 KBS ‘TV쇼 진품명품’도 애착이 가요. 90년대 KBS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리포터 잘한다고 칭찬 많이 받은 생각도 나네요. 제가 참 별의별 프로그램을 많이 했어요. 어린이 프로그램도 했던 것 아세요? MBC의 80년대 어린이 프로그램 ‘모여라 꿈동산’도 했고, SBS가 개국할 때 슈퍼마리오 분장을 하고 연기도 했어요.
-30년 연기 생활을 하며 느낀 점은
코미디언이지만 드라마에도 열 몇편 출연했어요. 30년을 하니 이제 연기의 맛을 조금 알겠어요. 정극이든 희극이든 세상 물정을 알아야 하더라고요. 어릴 때는 정말 멋모르고 연기했거든요. 그러나 경험이 가장 좋은 성생이더라고요. 제가 슬픔, 배고픔을 느껴봐야 남을 웃길 수 있거든요. 코미디는 공감대 형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죠. 코미디는 아무리 소재가 좋아도 연기력이 바탕이 돼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중견 코미디언들이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연기 인생의 좌우명이 있는가
저는 제가 걸어온 30년 길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개척해 왔어요. 제 발로 개그맨 시험장에 걸어들어가 개그맨이 됐고, 방송국에서 윗사람에게 아부 하거나, 누구의 도움을 받아 본 적이 없어요. 그건 자부할 수 있어요. 그러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늘 겸손하고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성공한다’는 게 제 신념이에요. 동료 개그맨 중에는 윗사람에게 아부해서 기회를 쉽게 잡은 이들이 수도 없이 많아요. 억울해 할 필요 없어요. 능력에 비해 인기가 많아지면 실력이 금방 탄로나더라고요. 진실은 금세 밝혀지거든요, 제가 아는 선배 개그맨 중 아부를 해서 뜬 이들은 모두 금방 이 업계를 떠났어요. 저는 죽으면 제 묘비에 ‘대한민국을 웃기려다 그 꿈을 못 이루고 죽은 사람’이라고 적고 싶어요. 아직 세상은 제 능력의 50%밖에 모르거든요. 아주 늙어서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다 떠나고 싶어요. 이번 30주년 디너쇼는 그 다짐을 널리 알리는 계기예요.
이지석기자 monami153@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