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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중,고등학교 태권도의 기틀을 잡아간 이유생 전 대한중고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은 국내 첫 태권도대학 설립을 추진한 얘기를 꺼냈다.
당시 유도 명문 용인대학교 전신인 대한유도학교(유도대학)를 보면서다. 1953년 개교한 대한유도학교는 향후 대한체육과학대학을 거쳐 지금의 종합대학으로 성장했다. 이 회장은 대한유도학교가 한국 무도 스포츠 발전의 디딤돌이 된 점을 강조하면서도 당시 ‘태권도학과’가 유도대학 내에 단과로 포함된 것을 봤다. 그는 “유도대학이 서울 중구 소공동 쪽에 있었다. 일본에서 유도를 배운 한 인사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대학까지 설립하게 됐다더라”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유도가 보급되고 학교가 설립된 건 매우 좋은 일이었는데 태권도가 유도대학 내에 포함된 게 마음에 걸리더라. ‘태권도 종주국으로 우리도 태권도대학’을 별도로 갖추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단열재 회사인 화신기업 대표를 지낸 그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태권도대학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또 여러 중앙 언론사와 인터뷰를 통해 국내 첫 태권도대학 설립 추진을 공식화했다. 1991년 5월1일자 조선일보는 ‘이유생 회장은 각종 인기스포츠에 눌려 돌아다보는이 없는, 그것도 중고(태권도)연맹이라는 하급조직을 4년째 묵묵히 이끌어왔다’면서 중고 대회 최초의 지상파 생중계, 저변 확대를 이끈 것을 조명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의 또다른 꿈은 국내최초의 태권도대학 설립’이라고 보도했다. 이 회장은 조선일보와 당시 인터뷰에서 “일본의 의해 국제화된 유도가 한국에서 유도대학을 설립할만큼 발전한데 비하면 우리의 현실은 창피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등과 이 문제를 협의, 3년 전부터 (태권도대학) 준비를 해왔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태권도대학의 지향점은 국기원과는 별도로 전문적인 해외인력의 교습과 지도자 양성, 학술화를 전담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태권도대학 설립은 이 회장의 꿈으로만 남았다. 설립 과정에서 자체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심사권을 하부연맹 등에 위임하는 조치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뜻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기에 이 회장의 몸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회장직 자체를 더는 수행할 수 없게 됐다. 이 회장은 “애초 심사권이 중고연맹에도 있었는데 나중에 국기원에서 모두 관리했다. 자립을 위해서 심사권 회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안 좋아지면서 더는 일을 추진하기 어려웠다”면서 “(태권도대학 설립을)해내지 못한 게 지금도 한이 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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