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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생(80) 전 대한중고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은 태권도 현대사 증인이자 세계화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이다. 지난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중고연맹 8~9대 회장을 역임한 그는 국내,외에 국기 태권도를 보급하고 알리는 데 이바지한 인물이다. 1세대 태권도인은 어느덧 70~80대가 됐다. 그들은 단지 신체단련을 위한 태권도의 길을 걸었던 게 아니다. 몸과 마음, 정신의 조화에 가치를 두고 태권도 세계화에 앞장서왔다. 스포츠서울은 태권도 국기 지정 1주년을 맞아 6회에 걸쳐 숨은 영웅 이유생 전 중고연맹 회장의 업적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1988 서울올림픽 때 처음으로 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채택된 태권도는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한 차례 더 시범 종목으로 열린 뒤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 남녀 4개 체급 모두 8체급 정식 종목으로 거듭났다. 한국 스포츠 외연을 넓히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국기 태권도가 세계 무대에 뛰어든 과도기였다고 볼 수 있다. 이유생 전 대한중고등학교연맹 회장은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의 길로 들어서는 데 소금 같은 구실을 한 조연이기도 하다.
특히 태권도계에서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선 전 세계에 태권도 존재를 확실하게 심어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이때 얘기가 나온 건 지금은 익숙하지만 당시엔 생경했던 태권도 시범단이었다. 국가대표로 구성된 시범단을 꾸려 올림픽이 열리기 전 주요 나라를 순회하자는 것이었다. 김운용 당시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은 중·고 태권도 기틀을 다지면서 태권도인의 신뢰를 받은 이 회장을 단장으로 선임, 시범단 순회 공연을 지휘하도록 했다. 이 회장은 “나 뿐 아니라 모든 태권도인의 꿈이 올림픽 정식 종목에 들어가는 것이었다”며 “시범단 공연은 매우 좋은 일인데 다만 정부 차원에서 예산 지원이 부족하다 보니까 현지에서 여러 어려움은 있었다”고 고백했다. 1992년 5월18일자 ‘조선일보’는 태권도 시범단 7개국 순회 공연을 보도하면서 이 회장의 인터뷰를 실었다. 그는 “올림픽 정식종목채택의 기틀을 마련하고 돌아오겠다”면서 “품새 시범과 격파외에 자유대련까지 추가, 생생한 프로그램을 통해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7개국 순회 태권도시범단 단장으로 선임된 이 회장은 순방에서 태권도의 우수성을 재확인하겠다고 다짐했다’면서 ‘6월2일 출국, 20일동안 스페인~폴란드~모로코 등을 차례로 돌면서 바르셀로나 올림픽 시범종목 태권도를 올림픽이 열리기 전 세계에 알리는 게 이번 시범단의 목적’이라고 소개했다.
이 회장을 비롯해 임원 6명, 국가대표 20명으로 구성된 시범단은 그렇게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 회장은 “그때 단장에 선임된 뒤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는 아직도 미흡한 공산권국가에 (태권도)보급 활로를 트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올림픽이 열리는)스페인 현지에 붐을 일으키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페인 세비야 엑스포 한국관에서 3일간 펼칠 시범계획이 순방의 성패를 가름할 것으로 보고 태권도 외에 한국의 미를 과시할 고전무용단까지 등장시켰다”고 떠올렸다. 그는 시범단 순회 공연 전,후 부족한 예산으로 사비도 꽤 많이 썼다고 웃었다. “그때 북한 주도의 국제태권도연맹도 활발할 때인데 나는 우리 태권도에 대한 인식을 심는 데도 애를 썼다. 유럽 현지 관계자에게 여러 교육도 했고 (순회 공연 이후)여러 나라 태권도협회 회장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관계자를 한국으로 초대해서 관광도 시켜주고 차비도 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태권도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의 당위성을 묻는 여러 나라 관계자 말에 이같은 말도 했다. “유럽 사람은 팔, 다리가 기본적으로 (종주국인)한국 사람보다 길어서 ‘올림픽에 가면 너희가 유리할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고 웃었다. 이렇게 이 회장을 비롯해 태권도인의 작은 염원이 하나, 둘씩 모여 결국 8년 후 시드니 대회에서 태권도가 정식 종목에 들어섰다. 이 회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식 종목 채택을 위해서 애쓴 1세대 태권도인이 너무나 많다”며 “최근 ‘태권도가 재미없다’면서 올림픽 퇴출 위기에 몰리기도 했는데 다시금 새로운 시각에서 태권도의 매력을 알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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