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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푸드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말레나 스필러가 지난달 한국에 왔다.

[글·사진 | 스포츠서울 이우석 전문기자] “세계적 맛 칼럼니스트, 한식을 말하다.” 말레나 스필러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세계적 푸드칼럼니스트이자 방송인, 그리고 요리사 등 그의 이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화려하다. 특히 해외 맛 평론가 중 한식에 대해서 가장 많이 이해하고 있는 ‘지한파’로 알려졌다.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한식의 인문학 심포지엄’ 참석차 한국을 찾은 스필러를 서울 반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만났다. 그를 만난 것도 처음이지만 도서관에서 인터뷰를 한 것도 이전엔 없었던 일이다.이날 ‘유럽 음식문화권에서 한식문화의 인지 및 수용성 연구’라는 주제로 장시간 발표를 끝마친 스필러는 만 70세의 고령, 피곤한 일정 속에서도 인터뷰 중 의욕적인 답변으로 프로다운 면모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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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의 인문학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 중인 말레나 스필러
- 한식에 대해 많은 경험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외국인이 느끼는 한식의 매력은 많이 이야기 했겠지만 문제점이 있다면?

매력을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반찬(정확하게 발음했다)’ 문화가 좋다. 테이블에 여러 음식(반찬)을 펼치고 또 무료로 무제한 제공한다. 얼마나 좋은가. 술과도 어울린다. 반찬은 워낙 다양한 종류가 나오니 어떤 사람의 취향에도 맞출 수 있다. 심지어 채식주의자와도 함께 식사가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이다. 불고기도 좋다. 조리방식이 멋지다. 테이블에서 직접 고기를 구워서 먹는다. 파티를 하는 것 처럼 서로 친해진다. 다른 지역에선 보기 힘든 음식 문화다.

문제점이라면 낯설다는 것이다. 유럽과 북미에선 한식이 중식, 태국식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 식재료도 낯설기 때문에 먹어보기 전에 겁을 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유럽인이나 미국인이 한식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다.

- 앞서 말한 것 처럼 한식은 반찬을 펼쳐놓고 먹는 방식이다. 먹는 순서를 제 맘대로 정할 수 있단 얘기다. 한 상에서 먹어도 순서는 각각 다르게 음식을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요즘 한식당은 외국인에게 ‘코스’ 형태로 제공한다. 전통적으로도 안맞고 창의성도 떨어진다.

한식은 기본적으로 음식을 나눠먹는 식문화라서 매력적이다.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 배려하고 챙겨주는 등 친목이 형성된다. 테이블의 크기나 조리사의 입장을 고려할 때 코스로 제공하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다. 매 순간 막 조리한 음식을 신선한 상태에서 즐길 수 있다.

다만 여러 반찬이 깔리는 한식의 경우에는 코스로 제공하면 이전 음식을 다시 맛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단점인 것 같다. 한식 상에선 어떤 음식(반찬)이 좋으면 다시 더 먹을 수 있는데 코스로 서빙하게 되면 접시를 치우고 난 뒤에는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반찬은 그대로 두고 메인 요리만 코스로 차례로 제공하는 것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유럽에서도 늘 코스 형태로 먹는 건 아니다. 우리집도 어렸을 때 테이블에 한가득 차려놓고 먹었다. 코스는 귀족 문화에서 출발해 레스토랑에 정착한 형태다.

- 휼륭한 요리사로 알고 있다. 만약에 유럽에서 한식당을 차린다면 뭘 팔고 싶나.

김치 스프가 어떨까? 김치는 이미 알려져있고 어디나 어울리는 훌륭한 소스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깍두기를 너무 좋아하는데 반찬이 아니라 달콤한 깍두기에 녹인 치즈를 곁들인 깍두기 팬케이크를 만들고 싶다.

내가 사는 영국은 날씨가 좋지 않다. 건강식을 팔면 좋을 듯 하다. 한식은 건강식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식 만두에 토마토를 넣으면 인기있을 듯 하다. 내일 쿠킹 클래스 시연이 있는데 반응이 좋으면 식당을 내볼까 한다.(웃음)

- 해외에서는 중식과 일식이 먼저 자리를 잡으면서 ‘젓가락 문화’가 알려졌다. 한국엔 고유의 ‘숟가락’ 문화가 있다. 한국의 식기 중엔 숟가락이 으뜸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폭넓은 사회 생활을 하는 미국인이라면 대부분 젓가락질을 할 줄 안다고 본다.(유럽은 아직 그렇지 않은 듯 하다.)

한국의 숟가락은 정말 특별하다. 스푼과는 다른 것 같다. 목 부위가 길고 종류도 다양하다. 재질도 디자인도 다르다. 한국 숟가락은 정말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밥을 푸고 국을 떠 마신다. 쌈을 싸먹을 때 장을 덜기도 하고 두부나 채소를 자르는 것도 본 적 있다. 펄펄 끓는 뜨거운 국이나 찌개는 숟가락이 없으면 아예 먹질 못한다.

숟가락을 한식의 아이콘처럼 상징화 시키면 좋을 듯하다. 스푼에 비해 얕은 한국 숟가락과 얇은 쇠젓가락은 사실 아직도 다루기가 어렵다. 한식이 좀 더 대중화되면 숟가락을 익숙하게 쓰는 서구인들이 많이 생겨날 듯 하다.

- 수많은 나라를 다니며 칼럼을 썼고 요리 강연 등 외국 음식을 접할 경험도 많았다. 한식의 이미지를 다른 나라 음식과 비교해서 말한다면 어떤가.

한식은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는 문화가 독특하다. 다른 나라와는 다르다. 어제 용산역에 있는 식당을 갔는데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그냥 옹기종기 모여서 즐겁게 밥을 먹는 것을 봤다. 한국에서 식사 시간이란 곧 친목 파티인 듯 하다.

서양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식은 일식과 가장 비슷한 것 같다. 외국도 그렇다. 각각 고유의 문화라 주장하지만 인근 국가는 서로 비슷하다. 가장 큰 유사점은 밥을 먹기 위해 다른 반찬을 먹는다는 것이다. 두 나라는 밥이 주인공이다. 장아찌나 간장 등 소스도 비슷해 보인다. 좀 더 매운 일식 쯤이라 생각했는데 이번에 다양한 한식 반찬을 맛보면서 일본보다 훨씬 여유롭고 풍족한 식사를 즐기는 것 같다. (김)초밥이나 김밥만 봐도 그렇다.

한식은 독특한 매력을 품고 있지만 사실 서구권에선 여전히 ‘아시안 푸드’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흘러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한식을 ‘Korean Food’로 홍보할 게 아니라 김치면 김치, 깍두기면 깍두기 등 각각의 메뉴로 내세우는 게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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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나 스필러는 셰프와 식재료의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 한국의 외식업 분야가 다양해지면서 예전에 보지 못한 외국 식재료가 수입되고 있다. 언젠가부터 한식 상에 마요네즈 샐러드가 오르고 레드비트가 깍두기를 대신한다. 전통 상차림을 변형시킬까하는 우려가 생긴다. 음식 평론가 입장에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셰프는 전통의 맛을 고수하는 사람이 아니다. 셰프는 요리의 맛을 위해 여러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재료를 써보고 이를 응용해 최상의 맛을 내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전통 로컬 식재료는 ‘추억의 맛’을 살려내는 주역이다. 어떤 사람이 외국에 살고 있는데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에서 난 재료를 접하면 즐거워진다. 그래서 중요하다. 좋은 맛을 추구하는 것이 셰프의 의무라면 더 맛있는 음식을 위해 그에 맞는 재료를 골라야 한다. 그것은 전통 식재료일 수도, 처음보는 것일 수도 있다.

특히 이탈리아인들이 그렇다. 식재료나 식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피자와 파스타엔 이탈리아 산 재료를 써야된다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주방을 보면 다른 나라에서 온 것도 많다. 점점 녹아들고 있는 것이다. 18세기만해도 유럽인 대부분은 커리나 간장에 대해 전혀 몰랐다.

이번 쿠킹 클래스에 감칠 맛을 내기 위해 참기름과 토마토, 사우어크라우트(독일 양배추 샐러드)를 사용할 생각이다. 생 토마토가 아니라 유럽(이탈리아)산 캔 토마토를 쓴다. 한국의 토마토가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울리는 조합을 위해서다. 남부 이탈리아에 나는 것으로 한국에는 없는 품종이다. 다른 나라에도 잘 없다.

◇말레나 스필러는?

러시아계 유태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스필러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프랑스어와 미술을 전공한 그는 음식의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인문·예술적 소양을 발휘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푸드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자신이 터득한 경험 속 레시피를 담은 조리서 60권 이상을 출간했고 전 세계 유수 미디어에 음식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BBC 등 유명 방송국의 음식 관련 프로그램에도 다수 출연했다.

demory@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