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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권오철 기자]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한 정부 조사에서 회사 오너가 소환되지 않게 해주는 댓가로 브로커에게 수천만원의 뒷돈을 건넨 의혹을 받는 애경산업의 전·현직 경영진이 업무상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현재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해당 브로커에 대한 항소심 공판을 앞둔 상황이나, 향후 검찰의 판단에 따라 브로커에게 법인의 자금을 건넨 애경산업 경영진도 재판에 넘겨질 전망이다.
24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A씨는 지난달 7일 애경산업의 각자대표인 채동석 부회장과 이윤구 부사장,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를 업무상 횡령·배임죄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애경산업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이 본격화된 지난해 ‘정부조사를 무마해 주겠다’ ‘오너가 소환되지 않도록 해주겠다’던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브로커 양모씨에게 6000만원을 지급했다.
이 같은 사실은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7형사부(부장판사 정계선)의 심리로 열린 양씨에 대한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알선수재)’ 혐의 재판에서 드러났다. 재판부는 지난 9월 27일 “이 사건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한다”며 양씨에게 징역 2년, 추징금 6000만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검찰에서 한 자백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피고인이 작성한 문건, 회의 메모, 텔레그램 메시지, 참고인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사회적참사특조위원들 일부에게 청탁해서 애경산업 오너가 소환되지 않게 해주는 댓가로 애경산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러한 행위는 알선수재죄의 알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애경산업 경영진에 대한 고발장에서 A씨는 “애경산업 소유의 재산을 ‘정부조사 무마’ 내지 ‘오너 소환 방지’라는 위법한 목적을 위해 지출한 것은 그 자체로 법인의 자금을 목적 범위 외로 위법하게 사용한 것으로 이에 대한 지출을 승인한 사람은 업무상 횡령(내지 배임)죄의 죄책을 면할 수 없다”며 “지출을 최종적으로 승인한 사람을 밝혀 처벌해 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A씨는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정부조사가 무마되고 오너의 소환조사를 받지 않는다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사람은 오너가인 채동석 부회장, 안용찬 전 대표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채 부회장은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차남이며 안 전 대표는 장 회장의 사위다.
또 A씨는 “6000만원이라는 고액을 범죄행위에 사용된다는 것을 알면서, 이를 감추기 위해 허위 컨설팅 계약서까지 작성해 위장 지출했다는 점을 비춰, 이는 최고경영자 또는 오너의 승인 없이 임원이 임의로 판단해 지출할 수는 없어 보인다”며 “‘채동석 부회장의 소개로 양씨를 소개 받았다’는 직원의 메모, ‘이윤규 대표가 부회장님의 소개가 있었는데 어서 만나보라고 지시했다’는 취지의 증언들이 관련 재판에서 제출됐다”며 엄중한 수사를 촉구했다.
현재 6558명(지난달 10월 1일 기준)이 사망하거나 건강상 피해를 입은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SK케미칼, 이마트, 애경 등 관련 기업 관계자들에 대한 과실치사, 증거인멸 혐의 재판이 각각 진행 중이다. 양씨는 ‘알선수재’ 1심 판결과 관련, 지난달 1일 재판결과에 불복하고 항소장을 제출했다. 양씨의 항소심 첫 공판은 내달 5일 열린다.
또 일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지난 8월 13일 ‘김모 애경산업 팀장이 고광현 전 애경산업 대표의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서 허위 증언을 했다’며 고발장을 제출한 바 있다. 이같이 사건이 산재해 있어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전담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권순정 부장검사)가 이번에 애경산업 경영진들에 대한 고발을 다루기까진 시간이 다소 걸릴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애경 관계자는 “(A씨 고발과 관련해) 아직 검찰측의 연락이나 조사를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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