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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괴물’이 입술에 침을 바르면, 야수들은 바짝 긴장해야 한다. 더 강한 공을 던져 ‘약한 타구’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비록 2연속시즌 개막전 승리투수에는 실패했지만, 팀에 ‘위닝 컬쳐’를 이식하기 시작한 류현진(33·토론토) 얘기다.
류현진은 지난 25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스버그에 위치한 트로피카나필드에서 ‘토론토맨’으로 첫 경기를 치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뒤늦게 문을 연 메이저리그(ML)는 올해 60경기 미니 시즌으로 팬들과 만난다. 류현진은 LA다저스 소속이던 지난해에 이어 토론토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올해도 개막전 출격으로 ‘에이스’ 입지를 다졌다. 팀은 이겼지만, 류현진 개인은 2연속시즌 개막전 승리 위업 달성에 실패했다. 자신도 “나 빼고 다 잘한 경기”라고 자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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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수비 도움 절실한 ‘에이스’
투구 내용은 알려진 대로 4.2이닝 4안타(1홈런) 3실점으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6-1리드를 안고 5회말 마운드에 올랐지만 쓰쓰고 요시모토에게 2점 홈런을 맞는 등 97개까지 치솟은 투구수에 발목을 잡혔다. 낯선 유니폼, 낯선 멤버와 치르는 첫 경기라 컨트롤 아티스트답지 않은 모습도 나왔다. 그런데 첫 실점 과정을 들여다보면 야수에 대한 신뢰가 아직은 완전치 않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3-0으로 앞선 4회말 쓰쓰고를 몸에 맞는 볼로 내보낸 류현진은 1사 1루에서 매뉴얼 마르고를 3루수 땅볼로 유도했다. 더블플레이가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트래비스 쇼가 글러브에 들어온 공을 한 번에 빼지 못해 타자주자가 세이프 됐다. 이날 류현진이 허용한 14개 타구는 타구 속도가 평균 85마일 정도에 불과했다. 야수들이 조금만 뒷받침 해주면, 어렵지 않게 이닝을 먹어 치울 수 있다는 의미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쇼의 플레이는 류현진의 평정심에 돌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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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입술에 침을 바르면…
류현진은 평소에도 입술에 침을 바르는 습관이 있다. 긴장하거나, 호흡이 흐트러졌을 때,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에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동작이 추가된다. 마르고가 1루에 세이프된 2사 1루에서 마이클 브로소를 상대로 던진 2구째가 볼 판정을 받자 류현진의 호흡이 살짝 거칠어졌다. 입술에 침을 바르고, 심호흡을 하는 등 평정심을 찾으려 애쓰는 모습이 나왔지만, 결과는 적시 2루타로 돌아왔다. 류현진은 위기에 몰리면 평소보다 더 강한 공을 던진다. 팔 스윙이 빨라지기도 하고, 투구 동작 자체가 커지는 등 변화가 엿보인다. 변화구 각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한 나름의 노하우를 투구에 녹여내기도 한다.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변하는 구종은 빗맞을 확률이 높다. 까다로운 타구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으니 야수들의 더 큰 집중력이 요구된다. 홈런 한 방으로 실점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류현진이 만들어내는 ‘약한 타구’는 가급적 실수 없이 처리해줘야 이기는 경기를 자주 볼 수 있다. 야수와 신뢰가 형성돼야 능구렁이 같은 류현진식 경기 운용도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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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닝 컬쳐, 하나로도 충분하다”
지난해 류현진이 등판한 29경기에서 LA다저스는 20승을 거뒀다. 2018년에도 15차례 등판 경기에서 10승을 거머쥐었다. 류현진이 등판한 날만 놓고 보면 승률이 0.682에 달한다. 올시즌 개막전도 토론토가 승리했으니, 류현진이 등판하는 날 팀 승률만 0.689에 달한다. 토론토 스포츠넷은 ‘류현진이 팀 승리에 끼치는 영향은 정상적인 시즌(162경기)을 기준으로 110승이다. 60경기 체제에서는 41승을 안기는 셈이다. 추측에 기반한 수치이지만, 이런 선수를 갖는다는 건 팀 입장에서 매우 좋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토론토 팬들도 ‘류현진은 연봉이 아깝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마운드에 보여준 흔들림 없는 모습 등은 팀의 젊은 선수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고 반겼다. 팀에 ‘위닝 컬쳐’를 심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