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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홍승한기자]“‘All Rise’ 앨범에 담긴 낙관주의와 사람들을 북돋우는 힘이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나 듀크 엘링턴의 ‘It don’t mean a thing if it ain’t got that swing’ 과 똑같은 일을 할 수 있기 바랍니다. 저의 음악이 이 어려운 시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료제의 역할을 하기를 소망하죠. 이 모든 것이 지나간 뒤 우리가 다시금 부활(‘revival’)하여 함께 일어서길(All rise) 바라니까요.”
미국 재즈계를 대표하는 남자 보컬리스트 중 한명인 그레고리 포터가 ‘All Rise’(올 라이즈)로 다시 한번 영혼을 흔드는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애초 상반기 발매를 예정했던 이번 앨범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연기로 28일로 공개가 연기됐고 지난 3월 그에게 전달된 서면 인터뷰 역시 최근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자신의 자작곡으로 이뤄진 여섯번째 정규 앨범 ‘올 라이즈’는 그레고리 포터만의 중후함 보이스를 중심으로 소울, 블루스, 가스펠 등 다양한 장르가 오케스트라와 밴드 사운드로 담겨 공존한다. 수년간 오케스트라와 작업을 거듭하면서 웅장하고 친밀한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낸 그는 이번 앨범에서 LA, 파리, 런던 등 세계 전역의 뮤지션들과 함께 했다.
그는 “이번 앨범은 오롯이 저 자신이다. 다시금 저의 자작곡들로 회귀했다는 점에서 ‘Nat King Cole and me’(냇 킹 콜 앤드 미)와 뚜렷이 구별된다”면서 “밴드 사운드에 오케스트라를 접목한 첫 번째 시도라는 점에서 이전 앨범들과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핵심은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굳건히 서고자 하는 소망, 서로 간의 존중과 사랑, 그리고 승리를 향한 갈망, 결코 억누를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믿음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인 감정들이다. 앨범의 제목 ‘올 라이즈’라고 지은 까닭은 이 음악이 모든 이들의 마음을 고양시켜주길 바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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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포터는 현재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시기에 음악으로 힘을 얻기를 바랐다. “우리 모두는 힘과 용기, 행복한 감정을 북돋아 주는 것들, 우리를 진정시키고 고양시켜 줄 무언가를 애타게 찾고 있다. 저는 약물이 아니라 저의 음악감상실에서 그 처방전을 발견한다. 스티브나 도나 해서웨이, 혹은 윌 스미스의 음악을 찾아 들으며 제가 특정한 기분을 느끼는 데 도움을 주는 음악들을 처방한다. 이웃과 가족들 간의 유대, 그리고 조금씩 헐거워지는 이 나라에 대한 유대에 이르기까지, 제가 믿고 있는 가치들을 다시금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지금 같은 시기에 저는 단순히 원하는 것을 넘어 음악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그레고리 포터는 2013년 세계적인 재즈 레이블 블루노트(Bluenote)에서 자작곡들로 이뤄진 앨범 ‘Liquid Spirits’(리퀴드 스피릿)을 발매하며 메이저 데뷔를 했다. 이듬해인 2014년에 해당 앨범으로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재즈 보컬 앨범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어 2016년 발표한 ‘Take me to the Alley’(테이크 미 투 디 앨리)로 2017년 그래미에서 다시 한 번 최우수 재즈 보컬 앨범상을 거머쥐며 명실공히 21세기를 대표하는 재즈 보컬리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던 그는 “저의 스타일과 음악을 통해 제가 하려던 일들이 공개적으로 인정을 받은 기분이었다. 재즈를 보다 접근하기 쉽게 만들고, 재즈 싱어송라이터라는 개념을 대중화시키며, 새로운 사람들을 재즈의 세계로 인도하는 일들. 제가 들었던 거장들을 통해 재즈라는 음악이 줄곧 제 마음을 어루만졌던 것처럼 재즈 열풍을 타고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다른 아티스트들에게도 격려가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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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미국에서 태어난 그레고리 포터는 목사인 어머니 밑에서 전설적인 재즈 가수 냇 킹 콜(Nat King Cole)의 노래를 즐겨 듣고 부르며 성장했다. 미식축구의 꿈도 가기고 있어 대학시절까지 선수로도 활동했지만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캐스팅 되어 프로 뮤지션으로 길을 걷기도 했지만 요리사로서도 재능을 보였던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길은 바로 재즈였다.
“오늘날의 성공이 있기까지 제가 살면서 겪은 경험들이 노래를 만드는 데 있어, 또 무대 위에서 스스로를 다스리고 보다 성숙한 사람이 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상심을 겪기도 하고 승리를 거두기도 하며, 때로는 가만히 세상과 삶을 돌아보아야만 했던 일련의 경험들은 제가 어떤 아티스트가 되어야 하는지,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데 특효약과 같았다. 18살 때 저는 이미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도 있었다. 그때 음악 커리어를 시작했다면 좋았겠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침내 음악가가 된 지금, 저의 삶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깊이 생각하고 받아들여 노래에 담아내는 것이야말로 제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015년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서며 내한했던 포터는 2016년 서울에서 첫 번째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가 만든 가사를 부르는 걸 보고, 관객들이 제가 부르는 모든 노래를 하나하나 따라 부르는 걸 목격하며 정말 깜짝 놀랐다”던 그는 “다시금 한국을 방문해서 전국을 오랫동안 투어하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는 재능 많은 뮤지션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K팝 외에도 힙합, R&B 신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아티스트들이 많아 보이는데 그 중 자이언티와 크러쉬 같은 아티스트들은 내 관심을 자극한다. 그들의 특별한 스타일을 좋아하고 언젠가 컬래버레이션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기대했다.
hongsfilm@sportsseoul.com
사진|유니버셜뮤직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