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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진이 승리한 후 감격에 겨워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글·사진 | 원주 = 이주상기자]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가 챔피언이라니 아직 얼떨떨하고 신기할 뿐이다.”

지난 4일 강원도 원주시 원주종합체육관에서 ‘로드몰 ROAD FC 059’가 열렸다. 메인이벤트는 페더급 챔피언 결정전으로 김수철(29·원주로드짐)과 박해진(28·킹덤MMA)이 이름을 올렸다. 이정영이 챔피언 벨트를 반납하면서 결정전으로 치러졌다. 박해진은 반전드라마를 쓰며 ROAD FC 3대 페더급 챔피언에 올랐다. 김수철은 세계적인 격투기 단체인 원챔피언십 챔피언출신으로 ROAD FC 밴텀급 챔피언도 지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두 단체에서 챔피언을 지내는 등 김수철은 경량급에서는 대한민국 최고로 인정받는 슈퍼스타였다. 지난 2018년 일신상의 이유로 은퇴를 선언했지만, 팬들의 열화와 같은 요구에 4년 만에 케이지에 복귀했다.

애초 전문가들은 김수철의 승리를 예상했다. 많은 미디어도 마찬가지였다. 김수철의 승리를 예상하며 ‘ROAD FC 사상 최초 두 체급 석권’ 등을 머리기사로 올려놓았다. 하지만 박해진의 승리로 급히 수정해야 했다. 박해진은 김수철을 맞아 초반 열세를 딛고 4분 50초 만에 길로틴 초크에 의한 서브미션으로 승리했다. 본인도 믿어지지 않은 승리에 박해진은 케이지에서 연신 감격의 눈물만 쏟았다. 박해진은 “대회사로부터 오퍼를 받고 ‘내가 감히 김수철 선수랑?’, ‘내가 게임이 될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이렇게 훌륭한 선수와 시합해볼 수 있겠나’하는 생각에 오퍼를 수락했다”라며 “내가 승리한 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챔피언이라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라고 감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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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철(오른쪽)이 경기가 끝난 후 박해진에게 절을 하며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 어떤 전략으로 임했는지 궁금하다.

타격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복싱 훈련을 많이 했다. 스파링도 많이 소화했다. 김수철의 공격력이 매우 좋아서 디펜스 연습도 많이 했다. 주짓수 블랙벨트여서 그래플링에는 자신 있었지만, 김수철도 블랙벨트다. 김수철이 레슬링에 강하기 때문에 관절꺾기 쪽으로 준비를 했다.

- 초반에 잽을 무수히 맞는 등 수세에 몰렸다. 역전시킬 수 있었던 계기는?

시합 전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는 하지 말자’라고 생각했다. 밀리는 시나리오도 예상했기 때문에 ‘항상 평정심을 가지고 침착하게 마음을 먹자’라고 생각을 했다. 마인드 컨트롤로 이겨냈다.

- 카운터 펀치 한 방으로 김수철이 무너지면서 경기를 끝낼 수 있었다.

대구에 있는 라온복싱 배수명 관장님으로부터 복싱 지도를 계속 받고 있다. 이번 시합을 대비해 라이트 크로스와 레프트 훅 연습을 엄청나게 했다. 복싱선수들과 실전을 방불케 하는 스파링을 많이 소화했다. 정말 열심히 연습한 것이 실전에서 나왔다.

- 마지막을 길로틴 초크로 장식했다.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하다.

길로틴 초크는 평소에도 많이 쓰는 기술이고 자신 있는 기술이다. 김수철이 싱글렉을 잡으면서 길로틴을 걸 수 있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찬스라 생각하고 젖 먹던 힘까지 쏟아부었다. 경기 초반에 김수철의 강력한 로우킥으로 허벅지에 데미지가 컸기 때문에 ‘여기서 끝내지 못하면 어려워질 수 있다’, ‘내 모든 걸 걸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아래에서 거는 것보다 상위포지션에서 거는 걸 좋아한다. 운 좋게 내가 좋아하는 포지션으로 역전되면서 피니시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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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진이 챔피언 벨트를 어깨에 메고 기뻐하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 경기가 끝난 후 김수철이 리매치를 요구했다. 본인의 의향은?

거부할 생각은 전혀 없다. 리매치를 하게 되면 부족한 점을 많이 보완할 것이다.

- 경기가 끝난 후 김수철과 뜨겁게 포옹했다.

잘했다고 칭찬했다. 평소에 존경하는 선배다. 4년 만에 복귀해서 링 러스트가 있었고, 밴텀급에서 페더급으로 체급도 올렸다. 힘든 도전이었는데, 패배했어도 상대 선수를 인정하는 모습이 정말 멋졌다.

- 격투기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 K-1과 프라이드를 보면서 동경하게 됐다. 킥복싱을 시작한 계기다. 그렇게 시작한 운동이 지금까지 하게 됐다.

- 격투기의 매력은?

강해지는 것에 있다고 본다. 내가 강하면 강자 앞에 비굴해지지 않고, 약자 앞에 거만해지지 않는다.

- 파이터로서 강점과 특기는?

주짓수가 베이스이기 때문에 그래플링에 장점이 있다. 주짓수는 그 누구와 싸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끈기와 신념이다.

-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주짓수 블랙벨트다. 주짓수의 장점이 궁금하다.

격투기를 하다 보면 넘어질 때가 많다. 일반적으로 상대가 위에 있으면 안 좋은 상황이라 여기지만, 주짓수에서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내가 깔려있어도 얼마든지 공격을 할 수 있는 것이 주짓수다.

- 롤모델은?

‘코리안좀비’ 정찬성이다. 프로선수로서 마음가짐과 자세를 많이 배운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모습을 보며 감동한다.

- 아직 닉네임이 없다.

닉네임은 팬들이 만들어주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 굳이 고르라면 ‘아나콘다’처럼 상대의 숨통을 서서히 조이는 선수가 되고 싶다.

- 훈련이 없을 때는 어떻게 소일하는지 궁금하다.

믿기지 않겠지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이 취미다. (웃음)

- 팬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

다섯 권을 꼽고 싶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말이 필요 없는 불후의 명작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다양한 도움을 얻을 수 있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데 도움도 된다. 워렌 버핏은 사무실 벽에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카네기 강좌 수료증을 걸어 놓았다고 한다. 이지성의 ‘생각하는 인문학’은 나에게 인문학의 재미와 기쁨을 알게 해준 책이다. 사색이라는 게 뭔지 알게 되었고 왜 인문학을 읽어야 하는지 알게 해준 책이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은 조나단 리빙스턴이라는 갈매기의 이야기를 그렸다. 갈매기들의 목적이 먹고, 사냥하는 것인데 리빙스턴은 빠르고 잘 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는 갈매기이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방향성을 가진 나와 처지가 비슷해 공감이 컸다. 책에 나오는 여러 명언이 가슴에 와닿았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은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누가,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지 잘 몰랐다. 하지만 4대 비극을 읽고 ‘나도 사회생활을 할 때 어느 정도 사람들과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겠다’라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그 시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고 인간의 내면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은 인간들의 횡포에 못 이겨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내용이다. 돼지가 정권을 잡게 되지만 돼지도 결국 인간과 똑같아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많은 모습과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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